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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05. 2023

속이 아플 땐 멕시코 내장탕 앞으로!

제대로 된 멕시코 내장탕을 맛보고 싶다면!

나 요즘 좀 힘들어


아내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걱정할 거란 걸 알면서도, 내 상태를 이야기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회사에서 받는 주재원으로서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되는 일보단 안 되는 일이 많고, 안 되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무거움은 외줄에 혼자 올라 어깨에 가족을 짊어지고 아슬아슬하게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자칫 잘못하여 떨어지면, 나 하나야 괜찮지만 가족은 무슨 잘못일까라는 가장으로서의 마음이 속을 뒤집는 가장 큰 원인이다. 속이 아프다. 그러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좋아지는 건 없다. 알면서도 식욕은 바닥을 친다.


아내에게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 한 건, 괜히 혼자 끙끙 앓다가 가족에게 그 억눌렸던 마음을 잘못 쏟아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중년의 가장이 짊어진 짐을 혼자 고뇌하다가 그걸 몰라주는 가족에게 화를 내고, 그러하므로 상호 마음의 거리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 서로 소원해지는 비극. 그걸 막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면 서로의 오해는 최소화될 수 있으니까.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질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아내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Pancita(빤씨따)' 먹으러 갈까?


과연, 아내는 나를 잘 조련한다.

힘들어 죽겠고, 바닥보다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진 식욕인 줄 알았는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입에 침이 고였다.

"그래, 인생 뭐 있나. 가자."


'Plancita'는 스페인어로 '배'를 말한다.

한 마디로 소의 위, 양, 대창, 천엽, 내장, 뱃살 등을 통칭한다. 여기에 고추와 양파 그리고 마늘로 우려낸 빨간 국물을 함께 곁들이면 멕시코 식 내장탕이 완성된다.


멕시코 내장탕의 제대로 된 맛을 보고 싶다면, 두 곳 중 하나를 가야 한다.


첫 번째는 이미 백종원 씨가 다녀와 유명해진 시장 한 구석에 있는 'Pancita Chabelita'이고, 두 번째는 1953년부터 시작한 꽤 역사가 는 'La Pancita Roma'다.


우선 첫 번째 'Pancita Chabelita'로 들어서면 많은 사람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된다.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눈빛은 '저 동양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지?'라는 의미이고, 종업원 분들의 것은 '한국 사람이겠네...'란 눈빛이다. 실제로 주문하기도 전에, 한 종업원 분이 다가와 백종원 씨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곳의 메뉴는 단출하다.

Pancita는 토기 그릇에 담겨 종일 끓여지고 있고 인도 난 처럼 바로 구운 또르띠야와 함께 나온다. 하얀 국물을 원한다면 'Caldo de Gallna (깔도 데 가이나)'를 시키면 된다. '깔도'는 국물을, '가이나'는 암탉을 뜻한다. 닭 부위 별로 시킬 수 있는 하얀 국물은 밥알도 함께 들어 있어 우리네 닭죽 맛이나 친근하다.


오늘 아내와 다녀온 곳은 두 번째 식당인 'La Pancita Roma'다.

이곳은 좀 더 선택지가 많다. 가격은 첫 번째 시장의 두 배다. 아무래도 도심에 있다 보니 가격이 높다. 그럼에도 부담스럽진 않은 가격이다. 양도 시장의 것보다 많고, 만약 칠라낄레나 타코를 먹는다면 그 가격은 매우 합리적이다.


우리 목적은 'Pancita'였으므로, 다른 메뉴는 나중에 먹어보기로 하고 Pancita '대'자를 시켰다.



술도 먹지 않았는데 해장되는 기분이 들어찼다.

아니, 어쩌면 술이라는 독이 아니라 스트레스라는 독이 분명 해장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색깔만큼 맵지 않은 국물이지만, 양파와 빨간 마른 고추를 넣으면 국물은 금세 매콤해진다.

좀 더 뜨거웠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내장과 어우러진 국물의 맛이 그러한 불만을 잠재운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털어놨던 걱정과 불안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것이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은 시장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무언가 더 풍성했다. 양도, 맛도.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깔끔하고도 푸근한 맛이었다.


곁들여지는 또르띠야는 아래 사진과 같이 먹으면 좋다.

멕시코 친구에게 배운 것인데, 꽤 편리하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따끈한 또르띠야를 하나 꺼내어 소금을 뿌린 뒤 돌돌 만다. 돌돌 만 또르띠야를 한 입 먹고, Pancita 국물을 한 입 넣으면. 조화로운 그 맛이 일품이다.



아픈 속은 속으로 달래야 하는 것일까.

덕분에 내 불안, 근심 그리고 걱정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아마도 불안한 마음은 또 고개를 들어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그게 삶이라고 받아들이면 마음은 다시 편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멕시코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움을 맛보며 그 아픔들과 함께 아웅다웅해야지 마음먹는다.


속이 아플 땐 내장탕을 먹어야지.

오늘처럼 아내와 함께.

그리고 가족과 함께.


좋지 않은 생각들을 쫄깃하게 씹고, 빠알간 국물을 들으켜 후루룩 삼킨다.


속이 참 시원하다.

무거운 어깨가 조금은 덜 결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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