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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18. 2023

길치의 축복

나는 때로 가보지 않은 길에 올라선다.

나는 길치다.

운전할 때 더 그렇다. 깜빡하거나, 자칫 망설이면 엉뚱한 길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엉뚱한 길로 빠져들어 내비게이션에 남은 거리가 수 십 킬로 더 늘어난 적도 있다. 그때 느끼는 자괴감은 생각보다 크고 세다. 선택의 기로는 시의성과 정확성을 강요한다. 선택은 제때해야 하거나, 정확히 해야 한다. 제때, 정확히 해야 하는 게 정답이라고 볼 수 있지만 둘 중 하나라도 하면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걸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길치여서 좋은 점도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자기 합리화일까? 아무래도 좋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니까.


네덜란드에서 주재원으로 있을 때였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가던 중, 갑자기 GPS가 잡히지 않은 때가 있었다. 길치인 나는 순간 당황했다. 가뜩이나 길도 모르는데, 달리던 중 내비게이션조차 길을 잃으니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너도 길치이기로 컨셉 확정한 거니...

낯선 표지판을 보며 달리던 길을 그저 달리는 수밖에.


그러다 접어든 어느 마을이 있었는데, 나는 한눈에 그 도시의 정취에 반했다.

길을 잃어 도착한 그곳은, 마치 무언가에 홀려 도착한 아름다운 신기루와도 같았다. 아, 길을 잃어 이런 곳을 맞이할 수도 있구나.


저주라 생각했던 것이 축복이 되고.

환장이 환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나는 길치지만,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다.

축복이라 생각할 때보단, 그러하지 않은 때가 더 많고. 더 이상 크게 자책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길을 갈 때, 내비게이션의 지도뿐만 아니라 마음의 지도를 켠다. 동서남북을 가늠하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크게 설정하는 것이다. 때론, 내비게이션만 보는 게 아니라 머리 위 표지판을 참고하기도 한다. 이것은 꽤 도움이 된다.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거나, 애매한 그래픽으로 나에게 선택을 강요할 때 차라리 나는 표지판을 보고 갈 길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때로 가보지 않은 길에 올라선다.

길치라서 잘못 접어든 길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가보지 않은 길을 일부러라도 가보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때론 목적지를 우회하여 도착할 때도 있지만, 또 때론 보지 못했던 걸 보는 여유를 누리기도 한다. 이는 꼭 운전할 때만이 나이라, 걷는 길에도 해당한다. 퇴근길을, 가던 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가보는 것이다. 내가 몰랐던 간판, 알지 못했던 가게. 왠지 모르게 더 낯선 사람들. 생활 반경이 조금은 더 커지는 듯한 그 느낌이 나는 좋다.


길치는 저주일까 축복일까.

그것을 판단하는 건 내 마음이지 않을까.


그저 내가 바라는 건.

자책하기보단 새로운 경험을 만끽하는 순간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운전 중에도.

걷는 중에도.

사는 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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