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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8. 2023

함께 만드는 지옥

지옥은 사후세계에 있지 않다.

운전을 하다 보면 조급증에 걸리게 된다.

평소 여유 있던 사람도, 운전대를 잡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운전대를 잡은 모두는 조급하기 때문이다. 왜일까? 출발점과 목적지라는 프레임 때문이다. 프레임이 형성되면, 사람은 가장 효율적인 거리와 시간을 추구하게 된다. 내비게이션이 알려 주는 빠른 길을 시작으로, 가장 짧게 걸리는 길을 선택하고 가능한 1분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려 애쓴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늦어지면, 손실 회피 경향이 발동하여 무언가 매우 손해를 봤다는 심리적 기제가 발동한다. 손해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그리하여 곧 조급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목적지가 딱히 없는 드라이브나 여행,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집에 데려다주는 길을 떠올리면 더 잘 이해될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다주는 길은 목적이 '도착'에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이므로 오히려 그 길이 더 비효율적이고 길어지길 바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이 '조급함'은 서로 함께 만드는 지옥에 일조한다.

나 하나 먼저 가야겠다는 마음은 꼬리를 물게 되고, 꼬리를 문 줄은 끊이질 않고. 신호가 바뀌면, 다른 교차로의 차들이 진입하며 그 결과는 아수라장이 된다. 여기에, 이러다 정말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조급함에 범퍼를 앞으로 더 들이밀다 보면, 이는 풀리지 않는 실타래와 같이 꼬이고 또 꼬이게 된다.


나는 오늘 아침 이 광경을 목도했다.

아니, 목도가 아니라 참여했다. 나 하나 고고하게 멈춰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진입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질서함의 혼돈 속에선 오히려 다른 차들이 내 앞길로 들어오기 일쑤였고, 가만히 있겠다는 의지를 보이니 뒤차는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내 신호는 이내 붉은색으로 변하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다른 라인의 차들의 눈초리는 서로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날카롭다. 재밌는 건, 신호가 다시 바뀌면 그 위치가 번복된다는 것. 이번엔 내 눈초리가 날카로워진다.


운전을 하다 보면, 이렇게 서로 함께 만드는 지옥을 자주 경험한다.

유치원 때 배웠던 빨간 불과 파란 불의 경계를, 어른이 되어 넘나들면서 질서의 경계는 무너지고 경적과 고성을 오가는 지옥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함께 만든 지옥은 어찌어찌 사라진다. 어떤 교통 체증도 영원하진 않다. 행복은 순간에 머물듯, 지옥 또한 한 순간인 듯하다. 그러나, 당시 느낀 조급함은 시간이 멈춰버린 영원의 무엇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조급함은 시간을 상대적으로 뭉개버리는 재주가 있고.

그 재주에 걸려버린 우리 모두는 지옥이라는 걸 이 세상으로 끄집어낸다.


내가 꺼내어 놓은 지옥과, 네가 보태는 지옥.

너와 나의 조급함과, 이기심이 만들어내는 합작품.


고로, 지옥은 사후세계에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이곳. 이 세계와 순간이라는 시공간에,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존재로 탈바꿈하여 호시탐탐 스스로의 출몰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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