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상속자,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까지 이어진 흥행에 제동이 걸린 작품... 아니, 드라마였다. (참고로, 김은숙 작가는 '제 드라마'라는 표현을 쓴다. '작품'이란 말은 타인의 단어라고 말한다. '재미'를 추구하는 그의 드라마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모습이다.) 난해한 스토리와 김은숙 작가 특유의 오글거리지만 재치 있는 대사를 배우들이 받쳐주질 못하면서 첫 주 10%대 초반 시청률을 기록한 후 결국 5%대로 종영을 맞이했다. 20% 이상은 거뜬해야 하는 그의 명성엔 상처가 되지 않을 리 없던 성적이었다.
그러니 이번 '더 글로리'의 영광은 문동은의 것이라기 보단 그를 위한 게 아닌가 싶다.
용서는 없고, 그래서 영광도 없겠다고 말한 장본인이 다름 아닌 문동은 이니까. 문동은에게 영광은 필요 없다. 드라마의 끝에서도 그 영광은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는다.
나는 김은숙 작가의 영광을 바란다.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클리셰에 비판이 오가더라도, 남녀 주인공이 주고받는 재치 있는 티키타카의 대사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도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재미'를 추구한다고 못 박지 않았는가. 비판하는 자들의 바람은 재미가 아닐 뿐, 아니 그 재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향유하지 못하는 것일 뿐. 나는 그가 만들어낸 대사들이 모두 하나 같이 다 놀랍다.
'이 안에 너 있다'란 말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일까?
'타락할 나를 위해, 그리고 추락할 너를 위해',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라임이 찰지고 그 상황을 또렷하게 그려내는 대사에 오히려 드라마에 집중하지를 못하겠는 안절부절못함은 그의 드라마를 재미지게 보는 또 하나의 요소다.
멜로장인이라 불리는 김은숙 작가는, '멜로'라는 본질을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바꾸는 건 포맷과 서사의 구조다. 예를 들어, 파리의 연인 재벌은 태양의 후예에서 별을 단 장군으로 대체된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의 사랑은 도깨비에서 신과 인간으로 피보팅 되었다. '더 글로리'는 멜로라는 기름기를 쭉 뺐지만, 결국 문동은에게 주어진 선물은 복수로 이어진 '사랑'이었다. 멜로의 정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줄 아는 그의 능력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또 하나, 그에게 빠져드는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샤머니즘이다.
몸이 뒤 바뀌는 것이나, 가슴에 칼이 꽂힌 도깨비. 그리고 신에게 외면받았다고 생각한 동은이 특정 종교를 벗어나 범신론적으로 도움 받는 그 모습에서 나는 전율과 소름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알고 보니 동은은 범신의 도움을 받고 있었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의도된 권선징악이라는 사이다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한 건 고통받는 자들의 정신적 해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던 위로의 장치다.
한 마디로, '더 글로리'는 그가 추구하는 재미와 사회가 돌아봐야 할 메시지, 그리고 학폭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가 가득한 '작품'이다.
굳이 '작품'이라 칭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다.
그가 굳이 '드라마'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굳이 '작품'이라 말한다. 내 기준에 있어 작품은 '재미'와 '메시지'를 맛깔나게 섞은 무엇이니까. 게다가 멜로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잊지 않고, 마지막에라도 넣어주었으니까. 무엇하나 잃지 않고 이어나간 그의 대단한 능력과 뚝심에, 나는 체육관 뒤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문동은에 빙의하여 소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