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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25. 2023

무시당하지 않으려 자신을 무시하는

어떤 것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떤 차를 살까?

해외 주재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며 무슨 차를 살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유럽에서 4년을 보냈던 터라 나는 확실히 실용주의에 젖어 있었다.

세계에서 평균 키가 가장 큰 나라에서조차 사람들은 소형차를 타고 다녔고, 콜라를 시키면 우리나라에서는 잘 팔지도 않는 200ml짜리 작은 병이 나오곤 했으니까. 옷에도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흐릿한 날씨가 잦았던 터라 그저 무채색의 옷만 몇 개 겹겹이 입으면 그만이었다. 


그래, 한국에서 출퇴근은 통근버스와 전철로 하고, 서울에서 대체로 벗어나는 일이 없으니 정말 실용적인 소형차를 사면 되겠지?

짐을 더 실으려면 해치백 스타일이 좋을 듯하고. 유럽에서 그토록 실용적으로 사용했던 해치백 차가 왜 한국에선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어. 내가 편하면 그만이니, 해치백으로 알아봐야겠다.


복귀 전 잠시 간 출장에서 나는 여러 곳에서 차를 알아봤다.

신차 매장을 가기도 하고, 지인의 중고차 매장도 들러 상담을 했다. 


자동차 구매 시장에는 마법 하나가 존재한다.

경차를 보러 갔다가 막상 돌아올 땐 대형차 열쇠가 쥐어지는 그 마법. 판매자에게 그것은 술수이고, 구매자에게 그것은 마술과 같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내 실용주의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도로 위 차들은 대부분이 중대형이었고, 차 안의 옵션은 휘황찬란했다. 어떤 기능 없이 잘만 살았는데, 한국에서는 도저히 그게 없으며 안될 것 같았다. 옵션 조합마저도 교묘했는데, 원하는 옵션을 위해 차 등급을 올려야 하는 눈에 뻔히 보이는 상술도 난무했다. 무엇보다, 왠지 한국에서는 이 정도는 타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럽에선 들지 않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이 아닌가. 수많은 생각과 느낌이 교차했다. 4년 간의 유럽 생활이 무색할 정도로,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우리네는 무시당하지 않으려는데 어떤 강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접받진 못할지언정, 무시는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정서가 가득하다. 행복하진 못할지언정, 불행하진 말아야겠다는 그것과 결을 같이 한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을까?


한국이라는 맥락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럽이라는 맥락에서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그러하지 않고, 또 외국인이라는 일종의 자유로운 생각이 남의눈을 덜 의식하게 만든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내가 내 생각과 신념을 무시하는구나. 나는 대개 이러한 선택 과정을 거치는구나. 무시야 당하지 않는 게 좋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걸 추구해야 한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사회적 맥락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더라도, 한 가지만 더 확인하기로. 


그러니까, 남에게 무시받는 것과 나를 무시하는 것의 부등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어떤 것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떤 것이 더 두려운 것인가. 


지금은 또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있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 애초에 생각했던 작은 차보단 큰 차를. 욕심을 부려 저 위까지 올라갔던 차보다는 낮은 등급의 차를 구매했었다. 만약,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묻지 않았다면 나는 확실히 그때 선택했던 차보다 더 큰 차를 구매했을 것이다. 내 필요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단 이유로.


딱.

그렇게.


자신의 시선을 타인의 그것보다 손톱만큼만 이라도 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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