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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12. 2023

삶이라는 부조리에 두들겨 맞지만, 그래도 명랑한 놈

삶을 축복하기로 한다.

나는 삶이 몽둥이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침의 내 몸은 어쩜 그리 욱신거릴 수 있을까. 어제라는 시간에, 아니 그보다 더 과거로부터. 그러니까 자궁을 박차거나 또는 그것에 밀려 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삶은 나를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고 두들겼고, 맷집이란 게 생긴 나는 꾸역꾸역 그렇게 삶을 살아내고 있다.


삶은 내게 달갑지 않은 무엇이다.

나는 그것을 바란 적 없고, 그렇다고 삶은 나에게 그 이유와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 것을 받아 들었는데, 그에 대한 설명도 이유도 아무것도 없다. 누가 주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아 들고 삶이 휘두른 몽둥이를 피해 이리저리 숨 쉬다 보면 하루가 가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는데, 대체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받아 든 그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지만, 이미 삶이라는 그것은 내 손을 침투하여 온몸과 생각 그리고 영혼까지 아우르고 있으니 어째 이번 생에 그것을 떨쳐내기란 쉬워 보이지가 않는다.


삶이 휘두르는 걸 몽둥이라 칭하는 이유가 있다.

아프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부조리'라고도 표현하는데, 내가 바라는 것과 삶이 선사하는 것에서 오는 괴리가 마치 몽둥이와 같아서다. 괴리가 클수록 몽둥이의 크기와 위력은 커진다. 때로는 앞통수를 맞고, 때로는 뒤통수를 맞는데... 역시나 정신을 못 차리겠는 건 뒤통수다. 사실, 삶은 내 특정한 곳의 어디를 겨냥하지 않는다. 무차별 폭행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원래, 때리는 자는 맞는 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때리지도 않겠지. 배려하는 자는 폭력을 쓰지 않는다.


폭력은 주먹과 신체 어느 일부의 마찰, 충격만을 일컫지 아니한다.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것. 이유 불문하고 저를 따르라고 압박하는 것. 그러하지 않는다면, 따끔한 무언가를 주겠다는 겁박과 실제로 틀어진 삶의 요소요소에 창궐하는 고통은 그야말로 폭력 그 자체다. 아프면 매일을 울었다. 하늘을 보며 원망했다. 허공에 삿대질을 하고, 주먹질을 해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내겐 남는 게 없었다. 이유도 안 알려주는 존재인데, 그 칭얼거림을 받아줄 리가 있겠는가. 더불어, 그러한 사람이 나 말고도 얼마나 많겠는가. 신인지, 우주인지, 아니면 외계 생명체인지 모를. 삶이라는 걸 창조해 낸 존재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는다. 배려심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부조리라는 몽둥이에 맞은 자는 있는데.

그것을 창조한 이에게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러한 적이 없다고 발뺌할 것이 뻔하다. 돌 맞아 죽은 개구리만 안타까울 뿐, 돌을 던진 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이제 난 웃는다.

즐거워서 웃는가? 때론 그렇다. 그러나 주된 웃음의 원인은 허탈함이다. 허탈하면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 탄식하는 웃음, 포기하는 웃음. 그렇다. 나는 탄식하고 포기한다. 그렇게 웃다 보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일 용기가 어디로부턴가 피어오른다. 잃을 게 없는 자에겐 무서운 것이 없는 법이다. 삶이라는 몽둥이와 부조리를 피하기만 했는데, 이제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 이곳저곳을 두들겨 맞아도, 이제 나는 그저 웃는다. 그리고 모든 걸 받아들인다. 확실히 이전보다 덜 아프다. 명랑한 척을 하니, 정말 명랑해지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부조리의 갭 사이에서 방황했다.

내가 바라는 것과 삶이 허락하지 않는 것.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과 삶이 아니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말이다. 내 멋대로 했다가 삶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얼얼하기도 했지만, 멍투성이의 얼굴로 그래도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삶과 다투지 않는다. 부조리가 발생한다 하여 그 대상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부조리 안에서, 내가 바라는 것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간 내 뜻이 이루어질 그날을 기다리면서.


삶을 축복하기로 한다.

덕분에, 나는 맞지만 명랑한 놈이 되었으니.


내일의 삶은 내게 또 어떤 몽둥이를 휘두를까.

사뭇 기대하며 욱신거리는 몸과 마음을 추슬러,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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