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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02. 2023

로그인을 시도한 사람이 본인 맞습니까?

당신이라는 존재에, 그 자아라는 계정에. 무사히 로그인하셨습니까?

출근을 해 이메일에 접속하려면 꽤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브라우저 열기, 계정 사이트로 이동하기, 비밀번호와 OTP 입력하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페이지가 열리면 클라우드 PC연결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다시 클라우드 PC가 작동할 코드 버튼이 뜨고 이걸 누르면 그제야 바탕화면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 다시 클라우드 PC 내 사이트를 열고, 회사 업무 계정 사이트에 접속하여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넣으면 휴대폰으로 알람이 온다.


'로그인을 시도한 사람이 본인 맞습니까?'


본인 확인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난다.

'계정'이란 이름 하에, 다른 지역이나 기기에서 접속하면 여지없이 본인이 맞는지를 증명해내야 한다. 문자로, 메일로. 지문으로, 얼굴로. '계정'이란 또 하나의 자아이며, 그것이 이토록 이중 삼중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건 디지털 내 남겨진 내 흔적과 자취 때문이다. 만약, 내 계정을 누군가 도용한다면, 그러니까 누군가 로그인은 시도한 사람이 나 인척 하며 그 단계를 통과하면 누군가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남이 내가 될 수 있다니?

디지털 세계에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본인'이냐고 묻는 그 질문의 깊이는, '계정'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넘어, 가장 진보한 지금까지의 방식은 생체인식인데 이 또한 의도치 않게 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생체인식으로 증명을 했다 한들 그것은 말 그대로 유기적인 몸의 일부로 통과를 했다는 것이지, 그 '본인'이 '본인'인지는 절대적인 관점에서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다.


현실 세계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현실엔 '계정'이 없다. 내 어떠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타인은 내 영혼이나 자아에 근접할 수 없다.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에서는, 사람의 머리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보는 '영'들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영화적 상상일 뿐, 영화적 상상은 현실의 불가능을 역설적으로 차용하는 것이므로 디지털과는 달리 현실의 세계에선 '계정'을 통해 누군가의 머리와 마음으로 로그인할 수가 없다.


여러 디지털 사이트와 기기에서 본인이 맞는지를 물을 때.

그래서 나는 좀 혼란스럽다.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데, 나는 나를 증명해야 하고. 나를 증명하는 방식은 영문자와 숫자의 조합 또는 그것을 통해 미리 등록한 생체 인식이 전부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증명한 '나'는 무엇인가?


본인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

그러나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는 잘 모르는 시대.


아이러니한 이 시대를 그래도 내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거창하지 않은 시도가 필요하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넣으라고 할 때. 본인인지를 증명하라고 할 때. 생체 인식으로 로그인을 할 때. 오늘의 '나'는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같은 강물에 우리는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우리라는 '자아'는 강물과 같이 흘러가며, 흘러간 후 맞이하는 자아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는 또 다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나에게 제대로 로그인을 했는지 묻는다.


어제의 나와는 다르지만, 그 영속성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존재.

오늘의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고, 이 소중한 오늘을 가지런히 내일의 나에게 전달해야 하는 존재. 과거와 미래, 그리고 오늘의 내가 서로에게 배려해야 나는 내 계정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묻고 싶다.

당신이라는 존재에, 그 자아라는 계정에.


무사히 로그인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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