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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1. 2016

[너를 만난 그곳] #23. 찬란한 날들

한 순간의 여유가 지난날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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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셨다.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은 강렬했다. 강렬하다 못해 찬란했다. 찬란하단 말을 할 정도로 눈이 부셨다. 그래서 잠이 깼다. 어제 밤늦도록 지지 않던 해였다. 아침이 되니 더 강렬해졌다. 내가 자는 사이 해가 지긴 졌던 걸까. 밤이 오긴 했던 걸까. 여기 네덜란드의 여름은 그러했다.


- 2 -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선명했다. 우주로부터 오는 신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텔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였다. 날리는 먼지가 선명한 햇살에 춤추듯 선명히 보였다. 당장 코를 막아야 할 것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먼지를 감상하고 싶졌다. 먼지가 그렇게 햇살에 유유히 떠다니는 모습을 보니 시간이 붕 뜬 느낌이었다. 잠시 시간이 유유히 흐르는 느낌. 또는 과거와 현재의 어느 사이에 있는 느낌. 한 순간의 여유가 지난날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순간이었다.


- 3 -


여행의 매력일지 모른다. 여행엔 고단함이 뒤따른다. 여행의 목적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고단함은 꽤 중독성이 있다. 여행의 그 고단함은 삶의 고단함을 치유하거나 또는 잠시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단함으로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고단함은 감내할만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게 여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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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햇살을 보니 문득 나도 찬란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열심히 살았지만 먹먹함을 안고 살아왔다. 그 먹먹함을 날려버릴 수 있는 게 바로 찬란함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찬란한 삶의 기억이 있을까? 그건 언제일까. 아마 사랑에 관련된, 또는 가족에 대한 그 어떤 순간이겠지? 한 없이 기쁜 그 순간을 찬란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 교육의 산물이므로.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아직은 그 어떤 기억이 나를 눈부시게 한 적은 없던 것 같다. 고로 아직 찬란한 삶은 오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음을 감사해야 할까? 아님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름을 불안해해야 할까?


분명한 건, 지금 이 방 안에 혼자 있지만 햇살이 눈부시다 못해 찬란하다라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렇게 찬란한 것일 수도. 또 어쩌면 매일매일의 어느 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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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울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그 아이의 눈물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감싸줄 필요가 없을 것 같았었는데, 갑자기 무언가를 감싸줘야 할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내게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었다. 누군가 귀 기울여준 것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무엇을 감싸준 걸까? 누군가 나를 감싸주길 바랐던 삶이 길었던 나는 그럴 맘의 여유가 없을 텐데. 간밤에 또다시 울지 않고 잘 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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