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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17. 2023

멕시코 생활 2년이면 김치 케사디야를 만든다.

멕시코 음식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단연코 '타코(Taco)'다. 타코는 부드러운 토르티야 위에 고기, 양파, 살사, 치즈 등을 얹어 그것을 싸 먹는다. 이 타코엔 성역이 없다. 우리네 비빔밥과 닮았다. 비빔밥은 말 그대로 비벼 먹는 것이기 때문에, 고추장과 밥이 있다면 그 안에 무어라도 비벼 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 타코 또한 토르티야만 있다면 그 안에 무엇을 싸 먹더라도 그것은 '타코'란 이름의 음식이 된다.


고백하자면, 멕시코에 대해 알기 전까지 나는 멕시코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타코, 부리또, 케사디야 등. 대체 무엇이 다른지를 몰랐다. 토르티야나 밀가루 랩 같은 것에 고기나 야채를 싸 먹는 게, 이름을 왜 달리 붙였는지를 물을 만큼 나에겐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네 비빔밥이나 덮밥 그리고 볶음밥처럼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을 비비건, 무엇으로 덮던 그리고 무엇을 볶던.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롭고 다른 요리가 되니까 말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오늘은 타코 말고 '케사디야(Quesadilla)'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케사디야는 두 개의 부드러운 토리티야 사이에 치즈, 고기, 야채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녹인 후 썰어 먹는 음식이다. 타코 또한 치즈를 넣어 먹기도 한다. 그러나 케사디야가 타코와 다른 점은, 아무래도 치즈 양이 더 많다는 점이다. 스페인어로 'Queso'는 치즈를 말하고, '-adilla'라는 '작은 것'의 뜻을 가지고 있어 케사디야는 한 마디로 '작은 치즈 요리'라는 점에서 타코와 차별성을 가진다. 케사디야의 원래 형태는 간단한 치즈와 토르티야의 조합이었으나, 현재에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타코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버섯 치즈 케사디야에 흠뻑 빠지다.

버섯 치즈 케사디야


최근 멕시코 현지 친구가 안내한, 길거리에 있는 대중적인 식당을 함께 들렀다.

이미 대부분의 멕시코 음식을 먹어 보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버섯과 치즈가 들어간 인생 케사디야를 만났다. 알고 있는 맛과, 알지 못했던 맛의 그 중간 어디쯤.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온몸이 반응하던 세포들의 꼿꼿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토르티야 탄수화물의 든든함과 치즈의 쫄깃함.

그리고 버섯이 내어 놓는 육즙(버섯이 고기 기름을 머금은 철판에서 구워진다.)과 그 세 가지가 선사하는 입안 가득한 맛과 향의 포만감까지. 하나로는 부족한 이 완전체적인 음식을 나는 여러 개 먹고 말았다. 그것도 다른 음식은 전혀 손대지 않은 채. 이 음식만 줄곧.


토르티야 속 치즈에 흠뻑 빠져 (행복하게)허우적 대는 나 자신을 상상하기도 했다.


집에서 한 번 만들어 볼까?


멕시코 음식의 인기는 다양성뿐만 아니라, 손쉽게 해 먹을 수 있다는 데에도 있다.

그날 맛본 버섯 케시디야를 기필코 집에서 해 먹겠다는 일념으로 마트에 들렀다.


송이버섯 얇게 자른 것.
토르티야. (옥수수로 만든 노란색, 하얀색 토르티야가 있고 밀로 만든 하얗고 쫄깃한 토르티야가 있다. 치즈와 함께 하는 토리티야는 대개 하얀색이다.)
고기 기름을 낼 삼겹살. (가능한 지방이 많은 것으로.)
와하카 치즈 (Oaxaca 주에서 나는 치즈로, 모차렐라 치즈와 거의 같다.)


끝이다.

정말 간단하다.


먼저 뜨겁게 달군 팬에 고기를 굽는다.

기름이 나오면 버섯을 넣는다. 버섯을 숨이 죽을 때까지 볶는다. 색이 거뭇해지면 치즈를 넣는다. 치즈와 함께 볶으면 끝. 아, 옆 팬에선 토르티야를 데워야 한다. 우리네 하얀 쌀밥이 따뜻해야 하듯, 토르티야도 그러해야 하는 건 이곳의 불문율이다.


내 생에 첫 케사디야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맛이 나쁘진 않았다. 다시금 그 식당을 찾기까지의 현기증을 달랠 수 있을 정도로.


생애 첫 케사디야. 그럭저럭 먹을 만.


이번엔 한국인의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기에 김치를 넣으면 어떨까. 고기 기름에 어우러진 버섯과 치즈. 그리고 김치의 향은 생각만 해도 군침을 돌게 했다. 한 번 하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김치만 넣으면 되는 거니까.


두 번째 케사디야. 김치와 어우러진 맛이 감동 그 자체였다.

고기.

버섯. 치즈. 토르티야. 그리고 김치.


이 조합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조건 김치만 바라는 한국인의 오기만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그 안에 넣을 수 있다는 토르티야의 관용과 다양성은 결국 섞는 것에서 온다는 멕시코 음식의 배려로 인한 도전이었다. 만약, 이것이 멕시코의 맛을 해치는 거라면 나는 시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름을 머금은 버섯과 그 독특한 향.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케사디야의 속내를 김치가 수수하면서도 화려하게 바꿔주면서, 치즈와의 풍미를 더했다. 한 끼 식사로 또는 야식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음식이었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도 쉽게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멕시코의 국민음식.


나는 앞으로도 타코와 케사디야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아니, 이미 흠뻑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멕시코 생활 2년이면 김치 케사디야를 만들 수 있는 거구나.

어설픈 요리사에게도 그 요리의 맛을 허락해 준, 멕시코 음식에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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