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y 16. 2023

작가의 자격은 글쓰기 전이 아니라 후에 있다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다.

글쓰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를 말해야 한다면, 나는 '자격지심'을 일컫는다.

스스로를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작가란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는 것이 꽤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각자의 머릿속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작가'란 개념에 기인한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떠오르는 시상을 따라 저 멀리 허공을 바라보는 흰머리가 조금은 있어야 하는 진중함. 또는, 가난함과 한 치 앞을 모르는 와중에서도 그저 써 나아가는 뚝심.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 놓는 예술적 고집까지. 또는, 천재적인 서술과 타고난 재능으로 표현해 내는 삶의 진기한 장면들. 써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벽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작가의 자격이다.


'자격'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관념이나 신념의 체계를 말하지만, 고착화되면 이것의 단단함은 물리적 속성을 뛰어넘는다. 이 단단함을 뚫어내지 못하므로 사람들은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 자격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그러한 자격은 내게 없다는 것으로 결론 내린다.


그러나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써 보니 알겠다.

작가의 자격은 글쓰기 전이 아니라 후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작가라는 페르소나는 내가 자발적으로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라는 사회적 역할은, 자발적인 것보다는 타의적인 게 더 많다. 스스로를 돌아보자. 남자나 여자, 아빠나 엄마. 또는 직장인이나 학생. 가족이나 친구라는 페르소나는 내가 원해서라기 보단 사회의 일원으로서 말 그대로 써야 하는 가면들이다. 때론, 그러한 역할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이미 쓰인 사회적 역할을 해내야 하기도 하며, 이러한 자아와 역할의 불일치로 인해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 얻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써야 하는 페르소나보다 스스로 쓰고 싶은 페르소나를 찾아 나가야 하는 이유다.


그리하여 나는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스스로 썼다.

어떻게? 씀으로 썼다. 글을 씀으로,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썼다는 것이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라는 말을 연신 해대는 이유다. 글을 씀으로써 작가가 되어 보니, 작가라는 자격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격지심은 글을 쓰기 시작함과 함께 사라졌는데, 쓰면 쓸수록 오히려 작가라는 자격에 대해 더 많은 고심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심은 꽤나 의미가 있다.

쓸수록 나는 작가가 되었고,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확실히 하려 하면 할수록 스스로 그 자격에 대해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 속에 있는 것을 내어 놓아야 하고, 그것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더불어, 뱉어낸 말과 써낸 글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또한 그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언행일치, 글행일치가 되어야 그 글엔 진솔함이 묻어나고 누군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하여 작가라는 자격은 글쓰기 전이 아니라 후에 있다.

누구나 쓰면 작가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꾸준히 그것을 써내느냐, 써낸 것으로 삶을 증명하느냐는 작가라는 자격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나는 작가라는 자격을 놓고 싶지 않다.

스스로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썼으니, 그 자격을 유지하는 것도 나에게 달려있다.


잘 쓰고, 잘 사는 것.

잘 살고, 잘 쓰는 것.


누구에게나 작가가 될 자격이 분명지만, 아무에게나 그 자격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나가 되지 않도록.

내가 선택한 페르소나를 계속 쓸 수 있도록.

작가의 자격을 스스로에게 계속하여 부여할 수 있도록.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쌓아간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