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쌓아간다는 것
누적되는 건, 단지 활자만이 아니다.
글은 물리적 실체다.
하나, 둘. 쓰다 보면 쌓인다. 쌓여가는 것들 속엔 물리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내재되어 있다. 내재된 것들을 파헤치다 보면,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이미 과거에 머문, 스스로를 문장 속 박제된 존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내가 쓰고 모아 놓은 글 안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존재한다는 건, 무릇 스스로를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면 존재는 소멸하며, 스스로가 알아주지 않는 존재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하므로, 글을 쌓아간다는 건 존재를 증명해 가는 일이다.
글을 쓰지 않아도, 스스로를 인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득문득 일어나는 일이며, 그것은 대개 감정이나 타인 그리고 세상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극된 인식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을 '인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자기 인식'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다시 정리하면, 글을 쌓아간다는 건 '자기 인식'의 기회를 높이는 일이다.
타의적 인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기 인식을 하게 되면 사람은 보다 적극적이고 진중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글쓰기 이전에 나는, 돌아보는 내 존재가 외부의 것으로 형성된 무엇이었다. 소비함으로써, 피드백을 들음으로써, 타인과 갈등에 엮이면서. 그렇게 돌아본 자아엔 깊이가 없고,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고민만 난무한다.
나는 오늘도 글을 쌓는다.
쌓인 글 속에서 나를 찾는다.
지난날의 글들은 오늘의 나에게 쓴 편지이며.
오늘 내가 쓰는 글은 내일의 나에게 남기는 메시지다.
시공간으로 분화되는 자아의 실체 앞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게 시공간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글을 쓰는 것이 그렇다.
시공간과 감정을 넘어, 씀으로써 맞이하는 삶은 그렇게 새롭다.
쓰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쌓아 보길 바란다.
누적되는 건.
단지 활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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