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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6. 2023

연필 깎고 싶은 날

그 많던 연필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만 보자.

연필의 기억이 어디까지였을까.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던 그즈음이 아닐까. 철제 필통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연필들. 나무와 흑연이 만나 뾰족하게 머리를 내우면, 종이와 만나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연필은 글자를 만들어갔다.


연필심이 뾰족할 때, 나는 그것을 비스듬히 뉘어 조심스레 종이에 맞대었다.

그러다 연필심이 뭉툭해지면, 연필을 바로 잡고 꾹꾹 눌러쓰기 시작했다. 악필이라 그런지, 연필을 잡는 각도와 연필심의 뾰족함에 따라 내 글자의 형태는 천차만별이었다. 일관적이지 않고 삐뚤빼뚤한 글씨들. 나는 그것들이 마음에 영 들지 않아, 연필을 탓하곤 했고 쓰기를 중단하며 괜스레 다시 연필을 깎곤 했다.


연필을 깎을 땐 칼을 사용하거나, 연필 깎기를 사용했다.

연필 깎기는 세 가지 형태가 있었다. 날이 달린 플라스틱 구멍에 넣어 손수 연필을 돌리는 수동식, 회전식 손잡이가 있어 연필을 끼우고 돌리면 되는 반자동식. 꽂기만 하면 알아서 깎아주는 자동식까지. 칼 만으로도 연필을 가지런히 잘 깎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글씨도 예쁘게 잘 썼다. 고로, 나는 칼 만으로는 연필을 제대로 깎지 못하는 축에 꼈다. 글씨도 잘 못쓰고, 연필도 제대로 깎지 못하니 나는 반자동식이나 자동식 연필 깎기를 선호했다.


연필을 깎다 보면 그 길이는 짧아진다.

짧아진 연필을 두고 그것을 '몽당연필'이라고 칭하곤 했는데, 절약이 미덕인 그 시대엔 볼펜 몸체를 결합하여 마지막 치약을 짜내듯 끝까지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끝까지 연필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몽당연필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반절 이상의 길이가 남은 연필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늘 새로운 연필을 필통에 가득 채우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많던 연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미처 다 쓰지 못하고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이 미련은 왜 갑자기 생겨나는 것일까.

서걱서걱 연필을 깎던 그때가 왜 갑자기 떠오른 걸까. 나는 왜 생뚱맞게도 오늘 연필 깎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건, 연필을 사용했을 때의 시대와 시절 그리고 나이가 그리웠던 게 아닐까.

책임보단 호기심이 더 컸던 시절. 뭐가 잘 안 풀리면 연필만 깎아도 되던 시절.


그러고 보니 샤프펜슬과 볼펜을 쓰기 시작하면서, 연필과 멀어지면서 어째 삶의 무게와 책임은 더해졌던 것 같다.


아, 나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연필이나 깎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기엔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 사각사각 글을 쓰기 위해 서걱서걱 연필을 깎던 그 시절을 좀 더 간절하게 향수해 보는 수밖에.


집안에 굴러다니는 연필을 찾으러 이만 글을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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