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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9. 2023

연애의 끝은 '안녕'이 아니라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떠오르는 아련한 밤

갑자기 로맨스 드라마를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간혹, 무언가에 꽂히면 끝장을 보고 마는 성격인데. 이 성격을 핑계로 지나간 드라마를 하루메 몰아서 다 보는 경향이 있다. 밤을 새워서라도 마주하는 그 드라마들 속엔, 연애 세포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결혼은 연애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연애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표방하는 나로선, 결혼 외의 연애를 할 수 없으니 드라마로부터 얻는 대리 만족(?)의 요소를 바라는 바가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연애세포 일깨우기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 속 이야기들은 거기서 거기다.

첫 화를 보고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고, 이 예측은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 이야기에 사족을 못 쓴다. 보고 또 보고, 뻔한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더 뻔한 장면을 마치 이전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몰입하며 다음화를 찾기도 한다.


사랑, 이별, 분노, 질투, 불륜, 외도, 바람, 시기, 배신, 순정, 찌질, 재회 등.

재료가 많아서일까. 내어 놓는 음식은 거기서 거기인데,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라고 이번에도 첫 화부터 마지막화의 엔딩을 보며 대리만족과 허무함을 동시에 느낀다.


사랑의 시작은 어느 누구나 비슷하다.

설레는 가슴과 함께 믿지 않던 운명을 느낀 상대와 한 순간 사랑에 빠지는 것. 그러나 이별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사랑이 식어서,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집안의 반대로,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냥 밥 먹는 모습조차 보기 싫어서.


최근 본 드라마에선, 전 여자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남자 주인공이라는 클리셰가 나왔는데 그 대사가 내게 많은 걸 생각나게 했다.

결혼식을 뒤엎을까도 생각했지만, 끝내 그가 말한 건 '고마워'란 말이었다. 때론, 어느 상황에서의 한 단어가 머리의 주마등을 On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금세 지난날 어느 이별의 순간에서, '고마웠어'란 말을 했다는 걸 찾아내었다.


기억해 보면, 이별의 감정은 '분노-미련-자아성찰-받아들임-인정-의미해석'의 순서를 따르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그래, 헤어지는 게 나아. 나도 잘한 것 없지'-'이별은 이별이구나'-'인연이 아닌 거였지 뭐'를 지나...'고마워'란 말은 마지막 '의미해석'의 단계에서 기어이 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이별은 유쾌할 수 없지만, 인생 한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진한 경험이기 때문이고 이것은 다음 만남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다.

이별을 해 본 사람이 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성숙함을 얻게 되므로. 그러하므로 그 소중한 경험을 함께 한 사람에게 '고마웠어'란 말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그 말을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는 상황과 그러하지 않은 상황이 있을 것이다.


'안녕, 고마웠어'란 말은 굳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아도 된다.

혼자 지나간 날을 회상하며 미소 지으며 읊조리듯 내뱉는 그 한마디는, 홀로여도 꽤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떠오르는 아련한 밤, 드라마 엔딩 크레딧이 서서히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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