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난 물속을 헤엄치는 돼지

by 스테르담

폭우 속 불어난 물속에서 헤엄치는 돼지를 보았다.

머리를 빼꼼히 드러내고, 코를 물 밖으로 간신히 쳐든 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아마도 짧디 짧은 그 네 다리는 얼마나 물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을까. 돼지의 사투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게 했다.


가까스로라도 살려고 헤엄치는 돼지의 모습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다시 살아난다고 한들, 아마도 그 돼지는 잠시 잠깐의 삶을 살다가 사람들의 먹이와 음식으로 생을 마감할 텐데...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돼지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곧 닥칠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린다 한들, 그 돼지는 폭우로 불어난 물속에서 헤엄치기를 포기했을까?

아닐 것이다. 우선은 살고 봐야 한다는 생존 기제가 짧고 작은 네 다리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오늘 하루 숨 쉬는 것처럼.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가벼운 손사래를 칠 수 있을 정도의 것들에 우리는 집착하고 요동하고 있다.


질문은 다시 나를 향한다.

나에게 있어 삶은 어떤 의미인가.


불어난 물속을 헤엄치는 돼지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오늘 하루의 의미.

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 모두가 부질없음을 알면서 우리는 왜 그토록 기뻐하고 아파하고 행복해하고 절망하는가.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갈 돼지와, 땅으로 썩어 스며들어갈 우리의 운명은 대체 뭐가 다를까.

우주의 먼지라는 생각에 모든 걸 놓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나는 내일 아침 울리는 알람에 허겁지겁 일어나겠지. 그리하여 지구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또 하루를 헤엄쳐야 하겠지. 사투를 벌이며 어떻게든 고개를 물 위로 들어 숨을 쉬겠지.


모든 생명의 고귀함은, 이처럼 힘겨운 삶의 늪에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삶은 참으로 사악하다. 반대급부에서 발견해야 하는 삶의 고귀함을 나는 거부하고 싶다.


우리의 모습을 보며 비웃음 짓고 있을, 절대자의 속내가 나는 꽤나 못마땅하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삶이라는 폭우 속에서, 헤엄이라는 처절한 삶의 분투를 해봤는지 말이다.


아니, 숨은 쉬어 봤는지를.

잠시라도 숨이 막히면 어떤 기분인지를.


나는 그에게 지금 당장 따져 묻고 싶다.


폭우로 불어난 물속, 헤엄치는 돼지를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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