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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09. 2023

도로 위의 악연

앞으로 끼어든 차가 속도를 줄인다.

급하게 끼어들고는 정속주행을 한다. 어라, 여긴 1차선인데...


우물쭈물하던 차에게 양보를 해주었다.

급정거를 한다. 휴대폰을 보더니, 경적을 울릴 새도 없이 쌩... 하고 가버린다. 덕분에 나는 신호에 걸린다.


어느 한 차가 내 차 측면을 들이박는다.

3차선을 가로질러 차선을 변경하던 차가 사고를 낸 것이다.


운전이 삶의 축소판 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도로 위 악연을 만나면 더 그렇다. 내 주위 사람을 선택할 수 없듯, 주위 차들도 마찬가지다. 도로 위 차를 나는 선택할 수 없고, 운전을 하다 보면 악연으로 얽히는 경우가 더 많다. 간혹, 서로 양보하는 천사와 같은 운전자를 만나곤 하지만 그건 정말 간혹이다. 운전대를 잡으면 누구나 조급해진다. 나 또한 천사보다는 악마의 마음으로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나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앞을 가로막고, 방향 지시등 없이 끼어들고. 마음이 조급하고,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땐 사방이 적이다. 차들도, 신호도, 도로 정체도. 운전대를 잡고, 그 좁은 공간에서 나는 세상의 적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길을 가고 있을 뿐. 사실, 나를 방해하는 차들의 목적은, 정말로 나를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다 보니 만남이 얽히고설키는 것이고, 저의 속도와 내 속도가 맞질 않으니 갈등이 발생한다. 도로 위에는 나보다 늦게 가는 바보와, 나보다 빨리 가는 미친 X만 있을 뿐.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므로, 타인의 차량은 나에겐 악연으로 생각되기 일쑤다.


도로 위 악연을 만났을 때.

그래서 나는 입으로 되뇐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있을 뿐.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도 그런 적 있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는 마음은 다른 이에게 양보할 여유를 가져다준다.


조금은 덜 조급해지는 느낌.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가려는 인연으로 보이는 차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네.

그래도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뜻은, 악연보단 인연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사람과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나를 괴롭히는 사람보단, 그러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걸.


나는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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