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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13. 2023

오른쪽 앞바퀴에 미안한 마음

"쿵"
"빠각!"
"삐삐 삐삐삐"


대개 운전은 다른 운전자와의 눈치싸움이다.

그러나 멕시코에선 또 하나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그건 바로 포트홀이다. 비가 오고 나면 움푹 파여 그 위용을 드러내는 포트홀은 꽤나 깊고 날카롭다.


어젠 포트홀을 제대로 밟았다.

쿵 소리와 함께 차가 뒤뚱했고, 뭔가 좋지 않은 소리가 들리더니, 공기압 센서가 요란하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공기압 수치가 0으로 되는 데에는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다행히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엉금엉금 기듯 하여 집 주차장에 다다랐다.


기분이 별로였다.

멕시코 도로에서 포트홀을 만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고, 예전에 몇 번 심하게 포트홀에 빠졌었지만 타이어에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왜 그런 거야 정말....이라는 말을 혼자 읊조리다가 생각해 보니, 늘 포트홀에 빠져 충격을 받는 건 (왠지 모르겠지만) 오른쪽 앞바퀴였다는 게 떠올랐다.


트렁크에서 응급조치 키트를 꺼내 차를 들어 올렸다.

바람 빠진 타이어는 참으로 볼품이 없었다. 게다가 휠이 아예 깨져있는 걸 보았다. '빠각!' 하는 소리가 이거였구나... 괜스레 오른쪽 앞바퀴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저 잘 버텨주니,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게... 이번엔 왜 힘없이 바람이 빠졌는지를 원망한 것도.


삶은 'P'버튼이 없는 자동차와 같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멈춰 있을 수가 없다. 액셀을 밟지 않아도 서서히 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때론 뒤로 방향을 틀어 후진을 해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 어딘가에도 바퀴가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때론 뒤로 가야 하니까. 삶이란 길을 내달려야 하니까.


그중, 가장 많이 세상과 부딪치고 아파하는 바퀴는 어느 쪽일까.

세상의 괴롭힘에 바람이 빠지고, 부조리라는 삶의 역설로 휠이 깨지기도 할 텐데. 그거 하나 견디지 못한다고 다그치던 그 바퀴는, 내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닐까. 곪아 터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의 속도를 어서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고. 바람 빠지고 휠이 깨진지도 모른 채 그저 내달려야 한다고. 


힘겹게 볼트를 풀러 기어이 차에서 떼어낸 타이어는 더없이 볼품이 없었다.

무겁기는 또 어찌나 무겁던지. 스페어타이어로 교환하고, 열심히 내달리던 바퀴는 속도의 추억을 뒤로하고 트렁크에 자리를 잡았다. 휠을 고치고, 타이어 바람도 다시 넣을 앞날을 기다리며. 그래, 잠시 쉬는 것도 좋지.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것이, 마치 마음 어느 한 편을 갈아 끼우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달리다 바람이 빠지면, 휠에 문제가 생기면. 그래. 쉬어 가는 것도 방법이지. 추스르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그림자를 앞서려는 마음만으로, 바퀴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면 안 되는 거지.


마음 곳곳을 살피기로 했다.

공기압 센서처럼, 마음 센서를 달고.


어느 마음, 어느 기분에서 '삐삐 삐삐삐...'소리가 날까.


세심히 귀를 기울여본다.

세심히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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