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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1. 2016

실망해도 괜찮아,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라는 책'의 '첫머리'


- 여정 -


Prologue

From 네덜란드 To 레이캬비크 (2박)

레이캬비크 To 골든 서클 (1박)

골든 서클 To 폭포 및 주상절리 투어 (1박)

폭포 및 주상절리 투어 To 트랙킹 및 요쿠살롱 빙하투어 (1박)

아이슬란드 To 네덜란드



레이캬비크, 첫인상에 대한 고찰


첫인상 전에 설정되는 '기대'치는 실제 그 대상을 맞이했을 때의 본질을 본의 아니게 결정하고 만다. 쉽게 말해, 첫인상은 '기대 이상'과 '기대 이하' 거의 이 둘로 나뉜다. 이러한 점에서 레이캬비크는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레이캬비크가 별로라기보다는 '기대'가 너무 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 살던 내 친구들은 부산역이나 인천역에 도착하자마자 어느 출구로 가면 바다인지를 묻곤 했다. 나 또한 레이캬비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슬란드스러운' 그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네덜란드에 살며 유럽 이곳저곳을 다녔던 터라 어쩌면 시야에 겉멋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눈의 임계치가 더 높아져 무언가 더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거나.


몇 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아이슬란드스러운 것을 볼 수 있을까


내가 레이캬비크를 처음 알게 된 건 한 자동차 게임에서였다. 그 자동차는 각 나라의 유명한 도시를 내달렸다. 인터라켄과 함께 상당히 낯설었던 또 하나의 도시,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는 우리네에겐 환상이 가득한 곳이다. 무엇보다 낯설고 유럽에서 가장 먼 곳, 자연 그대로의 것들을 머금고 있는 맘먹고 가야 하는 곳. 그 이유만으로도 마성의 매력을 내뿜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겨울의 오로라와 빙하도 큰 기대를 하는데 한몫을 한다. 물론, 윌터의 상상이나 꽃청춘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설레는 첫 여정


아무리 기대 이하였더라도 실망하긴 이르다. 기대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이니 여행지가 별로라도 서로 위안하면 그만이다. 비행기로 이동한 여행의 첫 여정은 차를 빌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특히나 아이슬란드는 도보나 대중교통으로는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 미리 예약한 렌터카 직원이 예상과는 다르게 나와있지 않아서 조금은 당황. 10분 늦게 나타난 멀쑥한 아이슬란드 청년은 우리를 렌터카 사무실로 조금은 수줍게 안내했다. 그 수줍음에 왠지 삐딱한 마음이 수그러든다.


시간 늦은 것은 마음에 안들었지만 수줍은 초보티가 확연해 마음을 수그러들게 한 친구


장인 장모님까지 총 6명인 우리는 가족용 큰 차를 빌렸다. 이런저런 보험에 '기대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는 차량 상태를 살피고 짐을 실었다. 속도위반을 조심하라는 수많은 공식/ 비공식적인 잔소리가 머리에 맴돌아 조심조심 속도를 맞춰 운전하지만 이곳 도로에 익숙한 몇몇 차들은 우리 차를 추월해가기 바빴다.


우리의 짐꾼과 발이 되어 줄 승합 차량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공항에서 레이캬비크로 가는 길 역시 기대보다는 못 미쳤다. 윌터의 상상 속 모습이라 하기에는 조금은 아니, 많이 모자라고 초라한 그 무엇. 더더군다나 군데군데 도시화가 진행 중인 레이캬비크의 초입은 자연 그 자체로 유명한 이곳 아이슬란드와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50과 70 그리고 도심 최대 80킬로의 조금은 답답한 속도로, 짧은 시간 우리의 포근한 집이 될 첫 번째 숙소로 향했다.


이틀을 머물 숙소, 온수에서 유황 냄새가 생각보다 짙었던


아이슬란드라는 책의 첫머리, "할그림스키르캬"


서점에서 낯선 책을 집어 들어 그 내용이 궁금할 땐 책의 순서 또는 책머리를 보곤 한다. 그러면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그 도시가 궁금할 때, 내지는 감이 오지 않을 때 가장 높은 곳에서 조망해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온다. 다행히 레이캬비크에는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있었다. 그래서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향한 곳이 '할그림스키르캬'다.


할그림스키르캬 전경.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아오를 것 같다.


높이 74.5m,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그 모양이 흡사 요새 또는 당장이라도 하늘로 솟을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17세기 성직자의 이름을 딴 교회건물로 1945년에 착공, 1986년 완공되었다. 교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느 유럽의 성당보다는 수수한 느낌이지만 입구 바로 위쪽에 위치한 오르간이 그 허전함을 채우고도 남는다.


수수함의 허전함을 채우는 입구 바로 위 대형 오르간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교회 안으로 들어가 기도 하는 자세를 취한다. 우리 가족의 안녕과 행복에 대해 기도했냐는 물음엔 언제나 자신이 가지고 싶은 장난감 소원을 빌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의 반복이다. 아이슬란드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는 기도를 위한 촛불 앞에 서서 불을 붙여보고 싶다고 한다. 가끔은 진지하게 설명을 해주고 불을 붙여 소원을 빌라고 하지만, 그 날은 용돈에서 깐다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불을 붙이지 않고 건너뛸 수 있었다.



전망대로 가는 티켓 또한 그  값이 '기대 이상'이었다. 레이캬비크는 아직 기대 이하인데, 모든 비용은 기대 이상이다. 교회 입구에 위치한 6명 정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버튼을 누른다. 느릿한 엘리베이터 속에 경건한 성가대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뭔가 모르게 마음이 고요해질 찰나 8층에 도착한다. 멀리 고개를 들어 바라봤던 사방을 향한 시계가 있는 그 층이었다. 시계 뒷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전망대는 레이캬비크의 사방을 조망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바라보던 시계의 뒷 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내리면 바로 위치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레이캬비크는 그리 특별하진 않았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옹기종기한 집들의 모집은 아름다웠지만 아직도 그 '아이슬란드스러운' 기운은 느끼지 못했다. 책머리를 봤지만 영 감이 오지 않는 책과 같이.



이렇게 마음속에 큰 물음표를 간직한 채, 그 날 하루 첫 날을 아쉽게 마무리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를 조금씩 알아가고자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기대 이하라는 마음이 가시지 않아도, 실망해도 괜찮을거란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니 생기는 마음의 여유.

그렇게 가족 여행.


- 덧붙임 -


숙소에 도착하여 허기진 우리 가족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려 물을 받았는데, 물에서 낯선 냄새가 났다. 약간 달걀 상한 냄새와도 같았는데, 알고 보니 유황냄새였다. 지하수가 온천수였던 것.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탭 워터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한 번은 마켓에 들러 생수를 사려하는데, 틱 장애가 있어 몇 분마다 한쪽 눈을 찡긋하던 금발의 훈남 점원이 계산을 하며, "아이슬란드 탭 워터는 베스트입니다. 생수는 탭 워터보다 신선하지 않아서 사시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산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유황 냄새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우린 그래도 구입을 희망했고 몇 번의 눈을 찡긋한 그 청년은 마지못해 바코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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