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두 번째 날 (고래투어 + 블루라군)
- 여정 -
Prologue
From 네덜란드 To 레이캬비크 (2박)
레이캬비크 To 골든 서클 (1박)
골든 서클 To 폭포 및 주상절리 투어 (1박)
폭포 및 주상절리 투어 To 트랙킹 및 요쿠살롱 빙하투어 (1박)
아이슬란드 To 네덜란드
습하지 않은 선선한 한 여름의 공기. 여차하면 춥다고 느낄 정도의 체감 온도. 햇살과 구름이 변덕진 사람의 그것과 같은 이곳의 날씨는 네덜란드와 흡사했다. 네덜란드와는 다르게 산이 곳곳에 있지만, 워낙 넓은 지형에 흩어진 모양새라 바람의 세기를 막지 못했고, 그렇게 바람은 구름을 몰고 다니며 네덜란드와 같이 날씨를 시시각각 변하게 했다.
그러기에, 익숙한 날씨기에, 아직 다른 곳이라는 특히나 그 특별한 아이슬란드라는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기에 레이캬비크에 대한 섭섭함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섭섭함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려 하루의 길을 나섰다.
아이슬란드는 화산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지열 또한 거대한 규모로 분포되어 있다. 숙소에서 맞이한 온수의 유황 냄새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던 길에도, 저 멀리 황무지 곳곳에서 연기와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레이캬비크 투어를 하기 전에 볼거리로 표기되어 있는 노천 온천으로 향했다. 가서 발이라도 잠시 담가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온천은 어떤 느낌일까를 느껴보고도 싶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곳에 'YLSTRONDIN'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그리고 코너를 돌아보니 정말 뜨거운 물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조금은 부푼 마음으로 그곳에 다가갔을 때 마음과 기분에 상처를 받고 말았다. 노천탕에 물은 싹 비워져 있었고 몇몇 출수구에서 온천이 힘 없이 내려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온 모락모락 한 김이 우리를 이끌고 또 실망하게 했다. 또 안내판에 있다던 다른 노천탕은 아예 존재가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노천탕. 탕 안에 들어가니 물이 하나도 없고 꼭지에서 뜨거운 온천물이 졸졸.
강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조금 위로라면 위로랄까.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엔 부족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물가에서 돌을 던지며 저희들끼리 웃느라 내가 받은 상처를 들키진 않았다. 그래, 너희들이라도 즐거우면 된 거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레이캬비크의 여행은 바로 '고래투어'였다. 아이슬란드의 바다는 얼마나 신비로울까. 그리고 조금만 나가면 고래가 보인다니 제대로 된 아이슬란드를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안내 표지판엔 종류별의 고래가 표시되어 있었다. 집채만 한 향유고래부터 아주 작은 돌핀까지.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 머리 속에는 고래들의 향연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영화 '프리윌리'의 한 장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번에도 '기대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 티켓을 구입했다. 오전 10시 출발 배. 오늘 고래를 볼 수 있겠냐는 물음에 티켓팅을 하는 금발 푸른 눈의 여성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그 끄덕거림에 내 머릿속 고래의 크기는 점점 더 커졌다.
마침내 배가 출발한다. 마이크에서는 아이슬란드스러운 영어로 쉼 없이 가이드를 하는 청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고래를 보기 좋은 날씨이며, 운이 좋으면 30분 만에도 고래를 볼 수 있다는 달콤한 설명이었다. 그 달콤함에 우리 가족은 모두 배 밖에 나가 섰다. 추위와 강풍, 그리고 방수를 위한 특수복까지 입고 말이다. 파도를 거슬러 바다로 향하는 배는 거침없었다. 그 거침없음에 배는 위아래로 요동쳤다.
그러자 어떤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어쩌면 영화 '부산행'에서 한 명의 좀비로 인해 기차 안 사람들이 감염되어 가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한 명 한 명에게 말이다. 그것은 바로 '뱃멀미' 바이러스였다. 함께 탄 중국 관광객 두 가족들은 가족 전체가 고개를 숙이고 뱃멀미 봉투를 입에 대고 있었다. 이내 배 안은 멀미 냄새가 진동을 하게 되었고, 바이러스의 힘은 점점 더 커져 한국 사람, 중국 사람, 유럽 사람을 가리지 않고 엄습했다. 배 안에는 기진맥진한 사람들이, 배 밖에는 토악질을 하는 사람 천지였다. 아직 출발한 지 40여분 밖에 안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둘째는 멀미는 하지 않았지만 이내 지쳐 잠들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누구보다 멀쩡한 첫째를 데리고 뱃머리에 있어 2시간이 지났을 그즈음 마침내 고래와 조우하게 되었다. 세네 마리의 고래 가족은 등을 수줍게 보이며 여기저기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등과 지느러미의 몇 차례 향연을 본 것이 전부. 그럼에도 첫째 녀석은 프리윌리를 본 것과 같이 좋아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녀석에게 참 고마웠다. 잠들어 보지 못하는 둘째 녀석을 걱정하는 첫째 녀석이 대견하기도 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는 것은 언제나 진리다. 다만, 고래를 보기 힘든 고래투어의 경우엔 예외.
Tip: 고래 투어는 최소 3시간 이상이 소요되며, 바다로 나아가는 길이 맑은 날씨라도 만만치가 않다. 고래를 보게 되더라도 먼발치에서 잠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단, 뱃멀미에 정말 자신이 있거나 고래를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저 바다 구경을 갔는데 돌고래를 보게 되는 행운을 기대하며 3시간을 인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인당 10여만 원의 비용을 감수할 수 있다면...
우리 전 가족들은 다행히 뱃멀미는 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게워낸 듯한 허기짐은 피할 수 없었다. 뭐라도 속을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본능이 발현되었다. 근처 해산물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배를 타기 전에 눈에 보아둔 집이었다. 크지 않은 규모에 사람은 이미 빽빽한 터라 맛에 대한 기대는 한껏 올랐다. 줄을 기다리는 동안 메뉴를 보며 무엇을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했다. 랍스터 수프와 갖가지 생선 꼬치, 그리고 이번엔 특별히 밍크고래 고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온 가족이 야외 식탁에 둘러앉아 식전에 주어진 빵을 먹었다. 허기진 터라,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먹는 현지 음식이라 빵마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내 이어지는 갖가지 생선 꼬치는 직화로 구워져 식감을 더했다. 밍크고래 스테이크는 맛이 참 독특했다. 첫맛과 질감은 소고기와 비슷하지만, 씹을수록 특유의 향과 바다 생선의 비릿함이 혀와 코 끝에 피어올랐다. 고래투어 이후, 추운 몸과 상처받은 그 맘들은 가족들의 밥상에서 맛있고 독특한 위로로 다시금 따뜻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가득 차 있었고, 계산을 위한 줄은 길고 길었다.
왼편에 보이는 메뉴들. 주로 생선과 야채를 곁들인 꼬치가 대부분. 오른쪽은 밍크고래 스테이크 메뉴.
랍스터 수프는 지친 속을 따뜻하게 달래주었다. 조금은 짜게.
밍크고래 스테이크의 식감은 소고기와 비슷하나 씹을수록 바다의 향이 짙어진다.
아이슬란드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이 몇몇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대는 바로 '블루라군'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연신 이어지는 광고 또한 비키니의 한 여성이 비 오는 블루라군에서 헤엄치는 모습이다. 늦게 나오는 짐을 기다리며 그 광고를 되새기다 보면 어느새 블루라군에 이미 중독되어 있다고 느낄 정도다. 사실 고래투어를 시작하는 그때부터 머릿속에는 고래보다는 블루라군에서의 시간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블루라군에 고래가 살았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이 들 정도였다.
블루라군으로 가는 길. 라바들이 한가득. 라바가 자라는데 수백수천 년이 걸려 관광객은 라바를 소중히 다뤄야 한다.
'Lagoon'은 영어로 '작은 못, 늪지'를 말한다. 블루라군은 물론 물 색으로부터 나온 이름이다. 실리카 성분과 갖가지 미네랄 성분이 만들어 내는 옥빛은 보자마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이들에겐 수영장, 어른들에겐 온천 및 사우나로 안성맞춤이다. 기분 좋은 정도의 물 온도가 온몸을 감싸 안으며 위로를 건넨다.
"오늘 참 힘들었지?"
어떻게 알았을까. 오늘 받은 상처를 모두 수다스레 털어놓을 뻔했다.
피부미용에 좋은 실리카는 무료로 사용 가능한데, 저마다 실리카를 얼굴에 바르고 있어 푸른색 물 위에 얼굴이 하얗게 범벅이 된 사람들의 모습이 이 곳 블루라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한편에 위치한 사우나, 그리고 지친 어깨를 두들겨주는 폭포수는 위로뿐만 아니라 피로를 풀어주기까지 했다. 물에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며 떠 있는 이곳이 바로 하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함께한 이 곳의 온도는 참으로 따뜻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없이 쾌활했고 즐거워하시는 장인 장모님, 그리고 와이프의 얼굴을 보며 다시금 물 위에 누웠다.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며, 인연임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가족 여행을.
P.S
고래투어를 한 후 레이캬비크 항구로 돌아가는 길. 파도를 타고 가느라 배가 그리 많이 흔들리진 않았지만 속이 좋진 않았다. 속을 잠시 달래려 배 후미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데 첫째 녀석이 뒤에 우두커니 서 웃고 있었다. 나를 찾아 2층까지 갔던 녀석이 아래 나를 보고 내려온 것이다. 뱃멀미는 1도 안 느낀 이 씩씩한 녀석은 아빠와 같이 있고 싶었다고 했다. 녀석을 들어 올려 다리 사이에 앉혀 함께 물거품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뒤에서 녀석을 꼬옥 안으니 서로의 체온이 전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울컥한 마음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전했다. "저도요"라며 그저 웃는 녀석의 얼굴이 더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