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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1. 2023

생존 스페인어를 배울 때의 마음가짐

내가 스페인어를 말할 수 있을까?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스페인어와 중남미에 눈곱만큼이라도 인연이 없었다.

오죽하면 멕시코 언어가 스페인어라는 걸 몰랐을까. 스페인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들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스페인으로만 가는 줄 알았다. 멕시코에 와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아, 생각해 보니 급하게 수강한 온라인 스페인어 강사 예씨 선생님도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다고 했다.


내가 스페인어를 말할 수 있을까?

답이 보이지 않을 땐, 질문을 바꿔봐야 한다. 나는 스페인어를 말해야 한다. 상황이 그렇다. 멕시코 법인에서 일하려면, 회의나 업무 그리고 생활을 해 나가려면 모두가 말하는 스페인어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질문은 '스페인어를 말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스페인어를 빨리 마스터할 수 있을까?'다.


사람은 유기적인 검색창이다.

질문을 바꾸니,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한다. 눈을 들고, 마음을 열어 방법을 찾는다. '주마등'이란 말을 알 것이다. 목숨이 다할 때, 지난날의 기억들이 촤라락 펼쳐 지나가는 건 삶의 마지막에서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빅데이터 검색의 일환이라고 한다. '생존'이란 단어를 들이대면, 간혹 주마등은 작동한다.


내가 스페인어를 말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촤라락 지나간다.


생존을 위한 스페인어,
그 마음가짐


6개월 만에 스페인어를 마스터하고 돌아보니, 언어 앞에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란 결론이다.

말로 표현 못할 스트레스와 절박함으로 이룬 성과. 그 시작은 '마음가짐'이었다. 앞서 질문을 바꾼 것도 마음가짐의 일환이다. 관점을 바꾸면 마음이 움직인다. 우리는 이를 '동기(動機)'라 부른다. 간혹, '동기'란 단어로 강의를 하곤 하는데, '기'자가 '베틀 기'라는 걸 사람들은 놀란다. 더 흥미롭게 풀어보자면, '움직이는 마음'을 '베틀에 엮어 하나하나 짜 나아가는 것'이 '동기'의 진정한 뜻이다. 한 마디로 움직이는, 요동하는 결심과 다짐을 고정하는 과정이다. 마음가짐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마음가짐을 잘 가진다는 건, 훌륭한 베틀을 마련한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해 절박함으로 마주한 스페인어 앞에서 나는 어떤 생각과 결심을 했던 걸까?


첫째, 공부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는 말이다.

반복하여 말한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처음부터 공부로 방향을 잡았다면 나는 절대 지금과 같이 스페인어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학습지 1단원만 새까맣게 공부하다 포기한 그 절망감을 반복하여 마주했을 것이 뻔하다. 우선, 주재원의 삶이 녹록하지 않으므로 공부할 시간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솔직해져 보자. 혹시 사무실 책상에 몇몇 책이 꽂혀 있다면, 그 책을 다 읽었냐고 묻고 싶다. 아마도 먼지만이 그득하게 쌓여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학위 파견이라면 모를까) 업무 외 별도 공부를 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공부하지 않는다는 뜻은, 실전으로 바로 넘어가겠다는 의지다.

문법, 동사 변화, 단어를 외우는 게 아니라 바로 부딪쳐 배우겠다는, 문장과 표현을 통째로 체득하겠다는. 고등학교 때 영어를 배울 때, 'To 부정사'가 그렇게 이해가 안 되더니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To 부정사'가 문장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느낌 그대로. 문법으로 문장을 말하지 말고, 문장으로 문법을 이해하는. 배움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 이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둘째,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겠지.


당신 앞에 한 외국인이 있다.

어설프게 한국말을 한다. 그 어설픔을 탓할 것인가. 아니면, 기특하게 봐주고 더 잘 이해해 줄 것인가. 1% 이내의 사이코를 제외하곤, 99%는 어떻게든 도와주려 할 것이다. 이거다. 그 마음에 기대면 된다. 물론, 이게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네덜란드 주재원을 할 때였다. 어설프게 더치를 말하니, 동료들은 그냥 영어로 말하라고 한다. 작은 나라여서 먹고살려면 영어를 해야만 하는 나라. 우스개 소리로, 네덜란드는 더치어를 배우기 가장 안 좋은 나라...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멕시코는 다르다. 국민의 20% 정도만이 영어를 말할 수 있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85%, 우리나라는 40% 수준이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다시, 외국인을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돌아가.

다행히 멕시코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다 (La gente de mexico es muy amable). 내가 스페인어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준다는 말이다. 말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덜하다. 나는 그냥 말하면 된다. 알아듣는 건 모국어를 쓰는 그들이어야 한다. 때로, 내 스페인어가 무척이나 부족해 잘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을 때 나는 ¡Estudia más español! (스페인어를 더 공부하세요!)라고 역으로 말한다. 큰 웃음이 서로를 한 데로 묶는다.


결론, 멕시코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므로 부족하게 말해도, 친절하게 이해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99%가 아닌 100%로.


셋째, 직장은 살아 있는 어학원


우스개 소리로, '회사는 출근하는 PC방'이란 말이 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우리는 모니터를 주야장천 바라보고 있다. 엑셀과 PPT를 무한으로 다룬다. 돈 받으러 출근하는 PC방. 이 표현이 전혀 과하지가 않다. 


자, PC는 이미 마스터했고.

이젠 스페인어를 배울 시간이다. '출근하는, 돈 받으러 가는 어학원'. 생각을 바꾸는 모든 게 배움이 된다. 한국 주재원들은 대부분 팀원으로 한국직원 몇 명을 포함하고 있다. 나는 좀 달랐다. 애초에 팀원 중에 한국인이 없었다. 거의 유일하게 한국인이 없는 팀. 솔직히 처음엔 절망이었다. 당장 한국말로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요청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위기는 기회가 된다. 기회라 생각하니, 스페인어를 말할 기회가 더 더 많은 것이다. 더더군다나 상사가 말하는 어설픈 스페인어를 단죄(?)할 팀원은 없다. 오히려, 더 상세하게 알려준다. 멕시코 직원들은 영어를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바람도 있다. 하여, 어느 직원들과는 나는 스페인어로 말하고 그들은 영어로 말하는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 시도 쉬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곳.

직장, 사무실은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넘치는 어학원인 것이다.




이 외에도, 멕시코 친구를 만들어 밥을 사주며 주말에도 대화를 이어나간 것.

스팽글리쉬(Spanish + English)를 말할 것이라 양해를 구하고 참석하는 바이어 미팅. '내 스페인어는 당신들의 한국어만큼이나 부족합니다 (Mi español es muy malo como tu coreano)'라고 말하며 그들의 친절함과 회의의 화기애애함을 이끄는 것. 


위기에서 한 톨의 기회라도 찾으려는 마음가짐은 점점 스페인어의 매력 속으로 나를 안내했다.


모든 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했던가.

삶에 있어 모두가 그러하진 않았지만, 스페인어를 배우는 그 과정에서 나는 그 말에 무척이나 의지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스페인어와 함께 또 하루를 생존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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