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Jan 20. 2024

생전 처음 배운 스페인 말

어쩌다. 생존 스페인어.

거듭 말하지만 나는 스페인어와 하등 관계가 없었다.

제2 외국어는 일본어를 했었고, 대학 교양 수업으로는 약간의 독일어를 공부한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스페인어는 내 삶에 개입할 일이 없었고, 나 또한 스페인에 굳이 다가가지 않아도 될 사이였던 것이다.


그러다 (10년 전) 스페인으로 가족 여행 갈 일이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스페인어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었다. 당시, 네덜란드 해외 주재 생활을 했던 터라 출장으로 많이 가 본 나라지만, 사무실에서는 영어를 썼기에 스페인어에 대한 갈급함은 없었다. 그러나 가족 여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가장이라는 페르소나는 여행에서도 작동하기에, 가족을 이끌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니까.


유럽 국가 중 대국은 영어에 미련이 없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이 땅에 왔으면 너희가 우리말을 써야지...라는 분위기다. 네덜란드와 같이 작은 나라는 영어를 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 누구나 친절히 영어를 말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스페인은 두말할 것도 없다. 스페인어는 영어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 아닌가. 유럽연합 전체 영어 사용율이 56%인데, 스페인은 30% 수준이니...(참고로 네덜란드는 70% 수준이다.) 길거리에서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여행만을 위해 다른 언어를 공부할 겨를도 없었다.

바쁜 주재원 생활은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까지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으니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한 동료가 내게 천금과 같은 조언을 해줬다.


"스페인을 여행할 땐 말이야, 딱 이 말만 알면 돼. 따라 해봐...'Sin Sal'..."



Sin = Without

Sal = Salt


스페인 여행 내내 다양한 음식을 접했지만, 결국 주식이 된 건 '빠에야'였다.

그런데, 빠에야의 맛은... 짠 것으로 여행객을 암살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짰다. 비싼 식당부터 길거리 저렴한 곳까지. 모든 빠에야의 맛은 짠 정도를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Sin Sal!"

우리 가족은 모든 식당에서 이 말을 반복했다. 정말 백 번은 말한 것 같다. 재밌는 건, 이렇게 말을 해도 그 맛은 여전히 짰다는 것이다.


멕시코에 와 6개월 만에 스페인어를 마스터한 이후, 이때를 돌이키니 웃음이 났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그곳을 어떻게 여행했는지, 'Sin Sal'이란 한 단어로 어떻게 그 다양한 도시를 돌아다녔는지를 되돌아보면 그저 재밌는 추억이란 말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배운 그 단어는 지금 이곳 멕시코에서도 잘 사용하고 있다.

간혹, 스테이크나 아르헨티나식 고기를 시킬 때 나는 "Sin sal, por favor. Y dame sal por separado. (소금 없이 해주시고, 소금은 따로 주세요.)"라고 말한다. 멕시코 음식들 중에도 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알고 있는 스페인어로, 10여 년 전 스페인을 여행했으면 어떨까.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스페인어를 듣고 말할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해야지.


문득, 'Sin Sal'이란 말이 머리에 콕 박혀,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하루였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