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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4. 2023

돈 없이 불행할래, 돈 많으면서 불행할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오랜 시간 진리와 같이 전해져 내려온 말이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만 의문이 생기는 말이기도 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게, 혹여나 내가 그만큼의 돈이 없어서 이렇게 힘든 건 아닐까 하고.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은, 행복이 그만큼 값어치가 나가거나 비싸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복을 위해선 돈이 필요해. 정말로.

어제였을 거야. 개운하게 목욕탕을 나와 편의점에서 함께 먹는 바나나 우유와 얼큰한 라면. 너희들은 기분이 한껏 좋아 보였어. 기분이 어떠냐는 말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행복하다는 말을 했지. 아빠도 행복했단다. 목욕을 하고 난 뽀얀 얼굴로 정말 맛있게 우유와 라면을 먹는 너희 모습. 하지만, 이 모든 게 돈이 있어 가능했다는 건 현실이야. 만약, 너희들이 그 행복을 간절히 원하는 걸 아빠가 알고 있고 그럴 정도의 돈이 없었다면 아마 아빠는 영혼이라도 팔았을 거야. 너희에게 우유와 라면을 사 줄 돈을 구하기 위해.


돈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돈에 집착하는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물질적'이다, '세속적'이다고들 해.

정도의 차이지 돈에 집착 또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와 물질문명의 한가운데에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당신은 돈을 너무 밝힌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저 그 사람보다는 돈을 덜 밝히는 것일 뿐. 그 누구도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단다. 우리는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


어떤 사람들은 돈 때문에 가족을 버리기도 해.

누군가는 돈 때문에 상대방을 속이고, 다치게 하고. 그럴 때 사람들은 말해. 

"어떻게 돈 때문에 사람이 그럴 수 있어?"라고.


그런데, 그게 정말로 '돈' 때문일까?


그건 돈의 본질을 몇 단계 건너뛴 표상일 뿐이야.

'돈'의 본질을 되새겨야 해. '돈'은 '가치'란다. 원시시대 때부터 사람들은 '가치'를 교환해 왔어. 물물 교환이지. 하지만, 내 것과 네 것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교환하고자 한 것이 바로 '돈'의 본질이야. 즉, 가치를 위한 '수단'인 거지. 


'가치'는 상대적이란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물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아. 정수기에서 받아먹어도 되고 집 앞 슈퍼에서 사 오면 천 원 안팎이겠지. 하지만 물이 고갈되고 극 소수의 사람만 마실 수 있는 양의 물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물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물을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사투를 벌일 거야.

이렇게 우리는 '가치'라는 것을 한 번 더 쪼개어 볼 수 있어. 그 안엔 뭐가 있을까? 그래, 사람의 '욕구'란다. 그러니 돈은 가치를 위한 수단이고, 가치는 사람의 욕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어. 


즉, '돈'은 사람의 '욕구'를 실현시켜 주는 중요한 '수단'인 거야.

그러니 그저 쉽게 '돈 때문에'란 말보단, 돈으로 이루려 했던 그 사람의 '욕구'를 보고 본질을 파악해야 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사람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했어.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순으로 말이지. 아마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원할 거고, 그 행복을 위해 자아실현의 경지에 오르려 다들 바라고 또 바랄 거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생리적 욕구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우리는 돈이 필요하단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니까. 돈이 행복의 기본이 된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중 하나야.


하지만 주객이 전도될 때 비극은 일어나. 

행복을 위한 욕구의 해결이 아닌, 욕구 해소를 위한 욕구가 일어날 때. 가치를 위한 수단인 돈이 가치 그 자체가 될 때. 우리는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어. 사실, 이미 이 세상은 '돈'이 '가치' 그 자체가 되고, '욕구'는 이기적인 탐욕으로 많이 변해 있단다.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은 그것을 막지 못했어. 아니,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더 가속화시켜 왔을 뿐.


그래서일까.

1897년 그 옛날에도. 화가 폴 고갱은 산업문명에 찌들지 않은 자연 상태의 인간, 인류의 본질을 찾아 남태평양 타히티로 들어가 아래의 세 질문을 던졌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빠는 마지막 질문이 그렇게 가슴에 남아.

돈을 벌고 욕구를 충족시키고. 탐욕을 일삼고 돈에 얽매이면서. 그래,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져도 가져도 불안한 인생일 텐데, 그러다 인간성을 잃을 수도 있는데. 그 짐을 짊어지고 어디로 가는 걸까?


하지만 현실은 결국 다시, 돈은 행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란 걸 깨닫게 된단다.

그러한 고민을 하더라도 우선 먹고살아야 하니까.


우선 살고 봐야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 아빠에게 '돈 없이 불행할래?', '돈 많으면서 불행할래?'라고 물으면.

아빠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거야. 최고급 슈퍼카에 앉아서 '돈이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투정을 부리고 싶거든. 어차피 불행할 거면 돈이 많은 게 좋겠지.


아마도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돈도 없고 불행한 삶일 거야.

그러고 싶지 않다면, 돈이 없더라도 마음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거고. 하지만,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이 되어야 행복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건 냉정한 현실이니만큼 잊지 말아야 하겠지?


돈은 추구해야 하는 게 맞단다.

그러면 좀 더 많은 가치를 얻을 수 있고, 욕구는 충족되며,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져. 


다만 한 가지.

돈을 '가치' 자체로 여기거나, '욕구'가 탐욕이 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단다. 


가장 쉬운 방법은, 혹시 나의 '욕구'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것이야.

그래도 헷갈린다면, 폴 고갱의 세 가지 질문을 마음속으로 열 번 되새겨 보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아무리 비싼 행복을 얻었더라도 내 마음이 불편하면 그건 행복이 아닌 불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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