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패턴은 다음과 같았지. '어떤 어떤 도움을 주는, 어떤 어떤 사람(정확히는 직업)이요'. 예를 들면, '우리 할머니를 안 아프게 해주는 의사요.', '우리나라를 알리는 유명한 과학자요.', '우리 집안을 명예롭게 하는 대통령이요.'등과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대통령, 과학자, 의사를 돌려가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왜일까?
세 직업의 공통점은 아마도 두 가지가 아니었을까 해. 첫째는 '훌륭함', 둘째는 '경제적 이유'. 아이들의 입에서 다양하지 않은 세 가지 직업군이 꾸준히 나온다는 건, 기성세대가 주입한 결과란 뜻이고 기성세대가 주입했다는 이야기는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단다. 그때는 그랬어. 고속 성장의 시대에, 돈과 명예를 구할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거든.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지.
아이들의 입에서 '아이돌'과 '유튜버'가 먼저 튀어나와. 시대상은 반영되었지만, 기성세대의 입김은 어쩐지 덜 들어가 있어. 여전히, 그 두 가지 장래희망을 말하면 인상부터 찌푸리는 어른들이 더 많을 거니까 말이야. 하지만 아빠는 (너희를 포함한) 요즘 아이들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득달같이 알아차려버린 거지. '돈'과 '명예'가 어디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지를. 게다가, 아이돌이나 유튜버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이미지도 강하니 금상첨화겠지. 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고, 그 이유를 찾는 게 어쩌면 더 힘들지 몰라.
훌륭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처럼, 우리는 꿈과 직업을 묻고 대답할 때 분명 그 어딘가엔 '훌륭함'이란 개념이 묻어 있어.
훌륭함은 돈을 달고 다닐 가능성이 높고, 꼭 그러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존경이나 인정을 받는다면 돈은 좀 덜하더라도 돈 이상의 보람을 찾게 되니까.
그렇다면 '훌륭함'이란 뭘까?
'훌륭'은 썩 좋아서 나무랄 것이 없다는 뜻이야. 나무랄 것이 없다는 것에 우리는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지. 그 환상을 이루어낸 사람이라면, 무언가 다를 거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러하기에 우리는 훌륭한 사람을 앙망하고 그 뒤를 따르려 노력하게 되는 거란다.
그러나 이 훌륭함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어.
자본주의 사회의 '훌륭함'은 바로 돈과 직결되어 있지. 한 마디로, 돈이 많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 과정은 필요 없어.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이면 떵떵거릴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이란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훌륭하단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지. 장유유서(어른과 아이 사이에 있는 사회적인 순서와 질서) 시대엔 나이와 품격이 훌륭함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아. 연로하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남겨놓은 유산으로 싸움이 벌어지고 얼마 남기지 않은 유산을 평가하며 '아니, 살아생전에 대체 뭘 하신 거야?'라며 자식들에게 욕먹기도 하는 세상이다.
다시, 과정은 필요 없어.
돈이 많고 봐야 하는 세상이다.
훌륭하면 행복할까?
그러나 이쯤에서 다시 되짚어 봐야 할 질문이 있다.
훌륭하면 행복할까? 돈과 명예를 얻고 나면 행복할까? 훌륭함이 행복을 보장할까?
청년 버핏이라 불리던 박상철이란 청년이 있었다.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모교에 일억 원의 돈을 기부하며 유명세를 탔어. 기부금액의 원천은 주식.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이상 운이 좋게 꾸준히 수익이 쌓여 큰 자산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더 많은 곳에 기부를 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가 말한 것들을 실천해 갔지.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고, 주식을 통해 꾸준히 수익을 거두니 워런버핏의 이름을 따서 청년 버핏이라 불렀던 거야.
그러나, 수백억 원의 자산가라 여겨졌든 가의 사기 행각은 금세 탄로 나게 되었어.
청년 버핏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사람들의 돈을 투자명목으로 받아 그 돈으로 기부금을 내고 다른 이들의 수익을 돌려 막기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그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20억 원의 피해액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있단다.
그는 왜 그랬을까?
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어. '선행을 하고 돈이 많다고 하니, 사람들이 우러러 봐주었습니다. 계속해서 그러한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라고 말이야. 결국,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그러한 일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라.
훌륭함은 어디에서 오는지. 훌륭해지면 행복해질지를 말이야.
훌륭한 사람 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라.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動機)'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로 나뉜다.
쉽게 말해, 내적 동기는 스스로 하는 것이고 외적 동기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발생하는 거야. 외적 동기의 가장 큰 예는, '칭찬'과 '꾸중'이 있겠지. 칭찬을 들어 더 큰 칭찬을 들으려 하거나, 하기 싫어도 안 하면 혼나니까 하게 되는 것. 박상철이란 청년의 동기는 바로 외적인 것에 치중이 되어 있었어. 사람들의 인정, 존경 그리고 칭찬. 그것에 중독되어 자신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일에까지 다다르게 된 거지.
훌륭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라 했지?
누군가의 인정과 존경, 그리고 칭찬이 훌륭함의 연료가 되어선 안된다. 어느 정도는 필요할지 몰라도 그 끝을 개념화하는 건 바로 자신이어야 해. 인정과 칭찬도 마찬가지. 그 최종 결재자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
고로, 외적 동기가 아닌 내적 동기에 더 집중해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더 반응하는지.
'Want(바람)'과 'Like(선호)'를 구분해라. 남들이 하는 것에 우르르 몰려 'Want'에 조롱당하지 말고, 내가 진정하고 싶은 'Like'에 온 신경을 쏟아라. SNS에 사진 올리기 위해 오마카세를 가기보단, 진정한 맛을 즐기기 위해 동네 초밥 맛집에 가라. 오마카세를 가더라도 한 번의 소비 경험이 아니라 장사의 프로세스, 다른 음식점과의 차이점 등... 내가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정보에 집중을 해라. 얻은 정보를 톻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라.
'Want'는 소비적인 소비를 일으킨다.
'Like'는 생산적인 소비를 일으킨다.
그 둘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알게 되면, 훌륭함보다는 행복함을 더 많이 찾을 수 있게 된다.
행복한 사람이 훌륭한 것이다.
먼 길을 돌아 아빠는 깨닫게 되었다.
'행복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아빠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조급함을 버리니, 삶이 조금은 더 편해졌다. 경제적으로도 더 순탄해지고, 이전보다도 더 큰 수입을 얻고 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안에서 내가 배울 것을 찾는 것.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스스로를 바꾸다 보니 행복지수는 높아지고 그에 비례하여 수입도 더 늘고 있다.
다시, 훌륭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라.
행복한 사람이 훌륭한 것이라는 걸 일찍 깨우쳐라.
행복한 사람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반면, 'Want'와 'Like'는 명석하게 구분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규명해야 할 것은 '자기다움'이다.
나 다움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억만금을 얻더라도 어느 지점(돈의 포만감)에선 더 이상 행복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 다움을 제대로 깨우치면, 돈의 포만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내가 원화는 삶을 살며 행복의 정도를 무한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