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이는 내 마음의 반응은 그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질투를 느끼고 만다. 시샘과 분노 사이에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고 툴툴댄다.
유튜브로 큰돈을 벌고 있는 사람을 보며 인생 허탈해지다가도,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겨 한 순간에 나락으로 가는 모습에 뭔지 모를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못난 모습인 걸 알지만, 각박한 세상에 각박한 우리는 그렇게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가족이나 친인척 관계에서.'남'은 언제나 늘, 잘 나가는 존재다.
왜일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나와 타인은 '일(一)'대 '다(多)'의 싸움이다.
우리는 선택적으로 타인의 성공을 수집한다. 타인의 실패나, 그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안중에 없다. 오로지 그들의 '결과'에만 몰두한다. 그러니 '남'은 늘 잘 나가고, 성공하는 존재일 수밖에.
둘째, 나와 타인 사이의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다.
'남'은 언제나 나보다 잘 나가 보일 수밖에 없고, 오히려 잘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럼 나는 언제 저렇게 되나라는 조급함이 고장 난 타임머신이 되어 마음의 시간을 헤집어 놓는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차선을 바꾸면, 옮겨간 내 차선만 더 막히는 삶의 진실이 이를 증명한다.
남 안되길 바라는 순간, 시간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조급해지는 건 다름 아닌 '나'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내가 잘 될 방법을 찾는 게 맞다.
다른 사람이 운으로 잘 나가던, 실력으로 잘 나가던. 그건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에게 운이란 게 왔을 때, 그걸 살려 낼 실력이 있는가, 사심 없이 삶의 목적과 목표에 맞게 나는 움직이는가. 그래서 나온 성과와 결과가 결국 나와 우리 것이 될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빠가 골프를 칠 때였다. 상대방과 비등비등한 상황이었다. 저 사람의 샷이 안 되길 빌었다. 이런, 멋지게 들어갔다. 아빠 차례엔 흔들리는 마음처럼, 스윙도 흔들려 버렸다. 오히려 그 사람의 샷이 잘 되길 바랐을 때, 내 연습 스윙을 한 번이라도 더 했을 때 아빠의 샷도 더 잘 된기억과 경험이 있다. 이건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