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지 않으니 맘이 편하다

by 스테르담

여행은 필수불가결한 어떤 행위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다. 그 어떤 동물이 여행을 하는가. 웬만해선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게 동물의 생존 방식이며, 철새나 연어와 같이 어디 먼 곳으로 가거나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건 어디까지니 생존과 대를 잇기 위한 처절한 행군이다. 오로지, 사람만이 즐거움과 식도락을 위해 안전한 일상과 테두리를 벗어나 위험을 무릅쓰고, 거기에 돈과 시간 그리고 체력을 들여 기어이 떠난다.


여행, 물론 좋다.

일상을 벗어나 바라보는 나의 하루는 꽤 특별하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느끼는 안도감은, 우리 집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무언가를 찾으려 여행을 갔다가, 찾으려 했던 그것을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서 마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우리 주위에 답이 있는 걸, 여행을 떠나 깨닫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은 비효율적인, 사람만의 행위일 수밖에.


그러나 삶이 고단해지는 건, '주객전도' 때문이다.

여행을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남이 가니까, 남들은 가는데 나는 안 가니까. 목적도, 목표도 없이 떠나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 수박 겉핥기식 관광이 될 가능성이 높고, 여행지에서 또는 돌아온 일상에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번 연휴엔 어디를 가지?

어디라도 가지 않으면 좀 그런데... 더더구나 해외 주재생활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움직이면 모두가 새로운 곳인데. 한국에서라면 엄두도 못 내었을 곳도 천지 삐까리인데...


그러다 생각했다.

이게 무얼 위한 여행일까. 연휴가 주어졌으니 가야만 하는 여행? 안 가면 무언가 마음이 불편한? 남들은 가는데 우리 가족은 아무 데도 안 가는 것에 대한 그 어떤...???


가족의 즐거움은 저 멀리.

연휴가 주어졌으니 어디라도 가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가족은 연휴에, 동네 어귀를 산책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햇살이 좋은 날, 걷고 이야기하다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브런치를 먹었다. 지나가는 길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에서 달달한 것들을 한껏 먹었다. 가족의 얼굴에서 보이는 웃음이, 어디 저 멀리 여행지에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엔 길가에 핀, 모르고 지나쳤던 꽃을 더듬거렸다.

그 꽃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을 텐데, 둘러보지 못한 미련한 마음이 미련해 보였고 그래서 웃음이 났다.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는 이미 여행 중. 가족이 함께라면, 어디든 즐거운 곳일 텐데. 삶이라는 여행지에서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것이 가족일 텐데.


여행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으니, 새삼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살랑이는 바람처럼, 언젠간 또 어디 먼 곳으로의 여행을 갈구하겠지만. 가족이라는 여행은 어느 강박도 필요 없는, 아주 편안한 일상이라는 걸.


나는 그날의 여행에서.

다시 집에 돌아와 그 의미를 깨닫고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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