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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9. 2016

뽀득뽀득 바덴바덴 데이트

예상치 못한 녀석들의 작은 선물


여정


네덜란드 to 트리어 (356km, 1박)

트리어  to 바덴바덴 (192km, 1박)

바덴바덴 to 코블렌츠 (214km)

코블렌츠 to  네덜란드 (324km)



독일의 서남부. 산속 기슭, 인구 5만여 명의 작은 도시. 그러나 올림픽을 개최 후보지 투표를 진행한 명실상부한 유명한 도시. 이렇게 작은 마을이, 도시가 유명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온천 때문이다. 로마의 유적지도 곳곳에, 더더군다나 공중목욕탕의 역사 그 자체를 간직한 도시.


트리어에서 바덴바덴까지 약 2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 머릿속엔 그저 온천 밖에 없었다.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피로로 이미 머릿속엔 온천물이 가득했다. 녀석들에겐 수영장을 간다고 일러두었다. 좋다고 난리. 다음은 어디인지,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수영할 거란 한 마디에 녀석들은 저희끼리 신나 있었다.


작고 아름다운 첫인상


도착한 숙소는 카라칼라 온천 바로 옆이었다. '온천'만을 머릿속에 두고 온 나에게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작고 아기자기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때때로 거대하고 웅장한 그것보다 강력하다. 바로 그곳이 도심의 중심. 작아도 어느 한 도시의 중심에서 오는 아우라.


기온은 어느덧 36도를 넘고 있었다. 호텔 주소로 안내된 그곳에 서서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층엔 식당이 즐비했고 아마도 그 위에 위치한 곳이 우리 가족의 쉼터일 것이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순수하게 생긴 웨이터 복장의 청년이 안내를 해줬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친절하고 세심하게 챙겨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숙소는 전날의 아쉬움을 멀리 날려버릴 정도로 화려했다. 방도 많았고 거실도 넓었다. 녀석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방과 침대를 미리 맡아 놓고 영역 표시를 해두었다.


숙소 골목에서 바라 본 주변
활기참과 소소함의 아름다움
호텔 전경. 수수하고 친근하다. 삶과 사람의 향기가 물씬.
꽃과 어우러진 그곳.


허기짐은 우리를 밖으로 안내했다. 날씨가 더워 호텔에 더 있고 싶었지만, 먹이를 달라며 고개를 쭉 빼고 우리를 바라보는 아기 새와 같은 녀석들의 아우성때문이었다. 물론, 와이프와 나도 많이 배가 고팠지만. 트리어에서 맛보지 못한 독일 슈바인학센이 떠올랐다. 주위 모든 식당이 '정통' 독일식을 표방하 그 메뉴를 찾기 어렵지 않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그리웠다. 예상대로 그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바삭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는 언제나 허기진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바삭한 껍데기와 부드러운 순살의 치킨, 겉은 바삭하고 속은 보들보들한 더치 감자튀김과 같이.

바삭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슈바인학센
아늑한 식당. 순박한 분위기.


예상치 못한 녀석들의 선물,
둘 만의 온천 데이트


가족 여행을 다니지만, 가끔은 녀석들을 남겨두고 와이프와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 많진 않지만 때로 장모님이나 어머니를 모시고 갈 경우가 그러한데, 사실 그렇게 둘이 데이트를 해도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리긴 매한가지다. 녀석들이 자는 틈을 타 잠시 암스테르담 시내를 거닐 때도 마찬가지.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첫째 녀석과 두 살 아래 둘째를 아직은 맘 편히 놔둘 수 없는, 우리도 부모가 처음인 부모라서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카라칼라 온천으로 향한 우리 가족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5시쯤 들어가서 4시간 이상을 머무르며 본전을 뽑으려 했던 우리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이 문을 닫았고 그래서 7살 이상 어린이만 들어갈 수 있단 말을 들었다. 급하게 오느라 꼼꼼하게 못 챙긴 탓이다.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은 팔에 끼는 튜브가 기본 제공되어서 여기도 그러려니 한 것이 문제였다. 수영을 기대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까...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 급하게 주위 수영장을 찾아봤지만 그 시간에 가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온천을 경험하지 못하고 간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녀석들에게 슬쩍 물었다.


"음... 엄마 아빠는 온천을 좀 다녀오고 싶은데, 혹시 너희 둘이 잘 있을 수 있겠니?"

"그럼요, 대신 저희 뭐 봐도 돼요?"

"그래... 닌자고나 터닝 메카드 보고 싶구나?"

"네, 맞아요."


더운 거리를 헉헉 거리며 걷다 들어온 시원한 숙소에서, 틀어 놓으면 3~4시간은 쓱 가버려 잔소리를 해야 그만 보는 아이들에게 이번엔 부탁을 좀 했다. 항상 고생하시는 엄마, 그리고 운전하느라 힘든 아빠를 좀 이해해 달라는. 우리의 고생을 아는 건지, 닌자고를 빨리 만나고 싶었던 건지 (아무래도 후자 쪽이겠지만), 두 녀석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자리를 잡는다.


"그래, 너희가 준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 생각할게. 고마워!"


카라칼라 온천 앞. 뜨거운 날씨 뜨거운 물.



심신의 위로, 카라칼라 온천


카라칼라의 명이었다. 212년부터 216년까지 지어진 공중목욕탕. 프리드리히 온천과 함께 운영되는 이곳은 현대식으로 꾸며져 한 해 5천만 명이 찾는 곳이다. 찜질방 문화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온천 수영장의 경험은 이곳이 그리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진 않는다. 어쩌면 이천 테르메덴이 바덴바덴의 카라칼라보다 더 화려하고 규모가 클지 모른다. 그럼에도 역사와 스토리의 힘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와이프와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온천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와이프 손을 잡아본다. 평소에 내 양 손은 첫째와 둘째가 차지하고, 와이프의 손엔 아이들을 위한 간식과 물을 담은 가방이 한가득이다. 기분이 좋다. 언젠가 떠나갈 그 녀석들. 끝까지 함께 옆에 남을 사람의 손을 잡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아참. 녀석들에겐 와이프 전화를 주고 왔다. 다행히 첫째 녀석은 제법 전화 통화를 예전부터 잘했다.


3시간으로 정했다. 아이들이 못내 잊히지 않아서다. 마음 같아선 한 숨 자는 시간까지 해서 영업 끝날 시간까지 있고 싶었지만. 옷을 갈아입고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마사지 기능이 있는 다양한 온천탕, 실내외를 넘나들며 피로를 푼다. 날씨는 푹푹 찌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물에 있다 나오면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아이들과 오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지만, 다행히 어린아이들이 보이진 않았다. 연인들이나 장성한 자녀와 함께 온 가족이 대부분. 물이 뜨겁진 않았지만 노곤한 몸과 마음으로 와이프와 이곳저곳을 함께 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둘만의 데이트.

1층 온천 수영장 [출처: 구글 이미지]
1층은 수영장 컨셉, 2층은 로마식 사우나로 남녀 혼탕이다. 수영복도 벗어야 한다. [출처: 카라칼라 홈페이지]


남녀의 앙상블, 혼탕 사우나


이제 제법 남녀 혼탕이 익숙한 나지만, 와이프는 그렇지 않다. 네덜란드에서 Gym을 다니는데, 사우나가 남녀 혼탕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처음엔 신경이 무척이나 쓰였다. 하지만 서로 몸을 빤히 쳐다보거나 하지 않는 예의와 남녀의 몸을 서로 존중한다는 취지를 받아들이면 그리 부끄러울 일도 아니게 된다. 나는 많이 경험했으니 와이프와도 경험해보고 싶어 2층 로마식 사우나로 향했다. 수영복은 벗어야 한다. 수건으로 몸을 일부 가리거나 두를 순 있지만, 탕이나 사우나에 들어갈 땐 벗는 것이 예의다. 관광객도 예외는 아닌데 남녀의 몸을 드러내고 다니지만 서로 의식하지 않는다.




결국 3시간을 채우지 못했다. 각자 25분간 마사지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생각이 머리와 마음을 떠나지 않아서다. 탈의실로와 전화기부터 살폈다. 이런, 전화가 우연찮게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첫째 녀석의 전화였다.


"아빠, 정말 미안한데요."

"어, 왜? 무슨 일이니?"

"전화 안 하려고 했는데, 동생이 무섭대요."

"어, 그래? 큰 일 있는 건 아니지?"

"네."

"엄마 아빠 이제 막 나왔으니까 얼른 갈게. 동생 잘 봐주고 있어."

"네, 알았어요."


머리 말릴 새도 없이 카라칼라를 나섰다. 뛰거나 급하게 걸음을 재촉하진 않았다. 물론, 마음은 이미 가 있었지만. 걱정도 되었고 또 와이프와 둘이 온천을 하고 온 것에 대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있었다. 미안함이 드는 건 아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고, 그때까지 아이들은 닌자고와 함께였다. 가끔은 닌자고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그래도 "아빠가 더 좋아요"라고 말하는 첫째와, "아빠와 닌자고 둘 다요"라며 말끝을 흐리는 둘째 녀석. 배고프다는 녀석들을 데리고 저녁 산책을 나섰다. 말은 안 했지만 녀석들은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왜 이리 빨리 오셨어요... 일까?


녀석들과 저녁 산책
여전히 더운 공기. 그래, 한 여름의 추억.
더위를 달래 주는 광장 앞 분수



- 바덴바덴의 추억들 -


호텔 아래 식당. 그리고 조식.
골목에 서 있는 큰 조각 상.
일요일 오전.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는 사람들. 방해될까 밖에서 열쇠구멍 통해 한 컷.
더운 날.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하면 힘을 낸다.
바덴바덴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지상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 바라본 바덴바덴
내려가는 길. 제법 빠르다. 아이들은 신났다.
짧지 않은 길. 타임랩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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