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활기참이 각자의 마음속에 한 가득
여정
네덜란드 to 트리어 (356km, 1박)
트리어 to 바덴바덴 (192km, 1박)
바덴바덴 to 코블렌츠 (214km)
코블렌츠 to 네덜란드 (324km)
여름의 끝자락이 아쉬워
전쟁 같은 한 주였다. 물론, 이런 전쟁은 하루하루 반복된다. 끝나지 않는 싸움. 끝나면 안 되는 전쟁은 월급쟁이의 숙명이자 먹고사는 고단함의 단면. 8월의 휴가 기간을 마친 사무실은 어느덧 그 활기를 되찾았지만 휴가 이후에 몰려온 고단함과 여독은 생각만큼 가시지 않았다. 몰려온 업무를 쳐내며 이미 많이 적응했다 생각했는데. 마치,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마음은 두 발짝 앞에 가 있으나 몸은 반 발짝 밖에 못 쫓아가 앞으로 자빠질뻔한 느낌의 그것처럼.
네덜란드의 날씨는 변덕으로는 으뜸이다. 비가 오고 안 오고의 변덕은 기본이지만 어쩐지 이번 여름의 더위와 추위의 변덕은 이전보다 더했다. 8월의 몇 주는 진땀을 뺄 정도로 더웠고, 바로 그다음 주는 가디건을 입게 만드는 추위를 몰고 오더니, 오랜만에 숨이 턱 막히는 더위를 또다시 몰고 왔다. 녀석, 여름의 끝자락이 아쉬웠던 거다.
햇살이 강렬하다 못해 찬란하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의 선명한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사무실의 온도를 높인다. 네덜란드의 건물들은 소중한 햇살을 받기 위해 건물 전체의 유리 면적이 매우 크다. 한 면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인적인 더위가 흔한 일은 아니니 에어컨은 없다. 한국보다 습하지는 않지만 본의 아니게 '온실 속 화초'가 된 기분. 가뜩이나 먹고사는 처절한 전쟁 중인데 몸과 맘은 이미 녹초가 되었다.
스멀스멀, 가족 여행이라는 위로가 필요함을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과 동시에 '여행'이 가고 싶어 졌다. 술로 인한 숙취는 다음 날 해장술로 푼다 했던가. 여행으로 쌓인 여독은 여행으로 풀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주재원의 업무 강도는 사실 상상 이상이다. 좋아서, 그리고 좋은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사명감을 갖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일이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더러워도, 힘들어도, 비참해도,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참아내야 할 일도, 어깨를 짓누르는 일들도 많다. 남녀노소를 막론한 가장이란 이름의 영원한 테마겠다. 주말까지 이어지던 회의가 갑자기 취소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강력한 도화선이 되었을 수 있다. 목요일 저녁에 와이프에게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토요일 회의가 취소될 것 같은데, 우리 금요일에 어디라도 출발할까? 와이프는 언제나 그렇듯 고개를 끄덕이고 내일까지 목적지와 볼거리 등을 모두 정리해 놓겠노라 했다. 가족 여행 가는 것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이유이지만 나는 안다. 내가 이렇게 갑자기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와이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걸. 내 어깨 위의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사랑의 배려라는 걸. 가족 여행이 얼마나 우리들에겐 위로와 힘이 되는지 서로 잘 알기에.
금요일 오후는 다행히 그리 급한 일이 없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늦은 오후 사무실을 나섰다. 목적지는 모르지만 가볍고 벅찬 마음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로 향했다. 마침내 온 가족이 각자 짐을 싸고 차에 한데 모였다. 아이들은 들떴다.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될 것인지, 또 큰 힘이 될 것인지를 이미 알기라도 한 것처럼.
와이프가 계획한 일정표를 받아 들었다. 언제나처럼 자세히 정성껏 목적지와 갖가지 정보들이 빼곡하다. 이것 때문에 잠을 잘 못 잔 눈치다. 운전은 항상 나의 몫이니 와이프는 눈 좀 붙이게 할 참이었다. 그런데 목적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트리에르? 트리어?' 발음부터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이곳을 목적지로 하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네덜란드 남쪽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평화롭다. 좌우로 펼쳐진 초원에 소와 양들이 여행을 잘 다녀오라며 인사하는 모양새다.
그래, 고마워. 안전하게 잘 다녀올게. 올라오는 길에 다시 인사하자.
Deja Vu in Trier
이름부터 낯선 도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아직은 해가 길어 밖에 나가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뉘엿뉘엿한 해는 그래도 늦은 저녁임을 잊지 말라고 속삭였다. 배고프다며 목을 빼고 바라보는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늦은 도심 저녁은 그리 활기가 있진 않았다. 차분했다. 발길 닿아 들어간 식당은 트리어의 대성당 앞이었다. 덕분에 꽤나 운치 있는 식사가 되었다.
그런데 식당으로 오는 길에 이곳이 독일인지 아니면 이탈리아인지 조금은 헷갈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가 많이 본 느낌. 여기저기 널려진 유적지의 흔적과 돌담길. 그리고 하늘을 뒤덮는 나무의 모양새가 '로마'를 떠올렸다. 유독 다른 독일 도시보다 '젤라또'가게와 오래되어 보이는 분수들은 그 느낌을 더하게 했다. 데자뷰하고의 만남이었다. 로마를 생각나게 하는.
아니나 다를까. 음식이 나오기 전에 잠시 검색해 본 '트리어'는 기원전 15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오래된 도시였다. 그것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 불리는 곳. 사실, 독일엔 로마로 향하는 로만틱 가도와 고성가도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에 그리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 로마와 같은 데자뷰를 연상시키는 정도가 다른 도시보다 유독 컸다. 데자뷰를 운운하는 것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닐 정도로.
차분함. 그리고 경건한 활기참.
오랜 운전과 늦은 저녁의 포만감은 우리 가족을 곤히 잠들게 했다. 다행히 숙소는 잠만 잘 정도의 그런 곳이었다. 겉에서만 보던 아기자기한 집의 내부는 그러했다. 삐걱대는 다락방과 같았고 무엇을 해먹을 생각이 크게 들지는 않는 환경이었다. 그래도 가족끼리 쌔근쌔근 잘 수 있었다는 데에 대한 감사함.
날이 밝은 트리어는 확실히 어제의 저녁과는 달랐다. 활기찼다. 그 활기참이 온 거리를 들썩 거렸다. 자유로운 시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발걸음을 멈췄다. 곳곳에 위치한 가이 Bar는 사람들을 활기차게 했다. 잔을 들고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트리어라는 곳의 활기찬 풍경을.
더불어 토요일 오후 12시 이전까지는 각 교회에서 예배와 미사가 진행되었다. 오르간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고, 사람들은 기도했다. 가장 큰 돔 성당은 오후 12시 이후에 관광객들에게 개방이 되었다. 들어간 곳에서 마침 성가대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를 연주라 칭함은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훌륭한 악기라는 찬사의 또 다른 표현이다. 온 교회에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의 연주는 사람들을 경건하게 했다. 경건한 활기참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 경건한 연주를 듣고는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기도했다. 그렇게 바깥 기온이 36도를 넘겼던 그때, 교회 안 사람들은 기분 좋은 시원함과 영혼의 위로를 교회로부터, 아니 각자 마음속에 있는 절대자로부터 받고 있었다.
- 덧붙임 -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기특하다가도 어린이들의 투정은 밑도 끝도 없다.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다건나, 목마르고 배고프다거나, 다리가 아프다거나 배가 아프다는 말을 시시때때로 내뱉는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버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달래줘야 하는 순간이다. 가끔은 감정을 참지 못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이런저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가족 여행을 다니다 보니 그 투정을 대하는 방법들이 자연스러워졌다. 물로 목을 축이거나 사탕을 물려주거나, 아이스크림을 한 껏 사주는 것이 그 방법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설명하는 것이다. 힘들어서 잠시 잃은 가족 여행의 소중함. 지친 아이를 꼭 안아주고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좋고 감사한 일인지를 진심을 담아 설명해주면, 녀석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손을 내밀어 걷기를 계속한다. 물론, 기특함에 아이스크림은 덤이지만. 난 그래서 녀석들이 좋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추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 사랑해. 너희들. 우리 가족 모두를.
녀석들에겐, 아직은 유네스코 문화유산보다는 근처 놀이터가 더 큰 의미
- 트리어의 이곳저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