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 Remember
Mori = to Die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허락되는 로마 공화정 시절의 개선식.
얼굴을 붉게 칠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며 시내를 가로지르는 퍼레이드엔 승전한 장군과 노예가 함께다. 그 노예는 연신 '메멘토 모리'를 외친다.
"죽음을 기억하라!"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개선장군에게 수여되는 관에는 아래 경고문들이 적혀 있다.
Memento mori
그대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Memento te hominem esse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
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자칫, 승전에 취해 신보다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그 시대 종교의 특유성을 엿볼 수 있으며, 인간 본연의 오만함을 애초에 다스리려는 진득한 성찰이 담겨 있다.
삶은 역설의 연속이다.
아이러니가 반복되며 상반되는 것들이 향연을 펼친다. 그 엇박자는 부조리라는 삶의 고단함을 만들어 내지만, 때로 그것은 깨달음을 얻게 한다. '유무상생(有無相生)'이 대표적인 예다. '유'가 있어야 '무'가 있고, '무'가 있어야 '유'가 있다. 컵이 물을 담을 수 있는 건 안쪽으로 '무'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고, 물이 채워짐으로써 '무'는 '유'가 된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물은 '유'가 되지만 공간으로 보면 그것은 다시 '무'가 된다.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되는 것들이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투쟁'과 '질서'가 공존하고, 상반하며 그 어느 한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얼굴.
삶과 죽음도 그러하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상기해야 한다. 일상화해야 한다. 늘 떠올려야 한다. 그러하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살아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살고자 하면 죽게 되고, 죽고자 하면 살게 되는 참으로 염치없는 삶의 아이러니함은 삶과 죽음을 경계로 두려움에 떠는 인간이란 족속을 농락하고도 남는다. 농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딱 하나. 삶과 죽음 그 둘을 동시에 떠올리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 받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버리려는 마음을 버리고. 긍정과 부정 중, 긍정의 것만 취해야 한다는 올바르지 않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삶의 역설이 우리를 농락해 왔다면, 우리 또한 삶을 농락할 때다.
긍정과 부정.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삶과 죽음. 그 모두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해 보자. 어느 하나만을 추구하려던, 다른 하나가 내 삶에 오지 않을까 벌벌 떨던 연약한 존재에게 그 어떠한 여유가 생긴다. 올 테면 오라지. 갈 테면 가라지. 모두를 수용하고 포용하겠다는 마음 가짐에, 어쩌면 삶은 당황할지 모른다. 부조리를 떠올리며 허공에 삿대질을 하던 어렴풋한 존재가, 이제는 삶의 진실을 스스로 알아내어 좀 더 견고한 모습으로 우뚝 서서, 요리조리 농락하던 삶의 긍정과 부정에 대한 저글링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아파하고.
행복은 영원할 것이라 착각한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그 유한성이 오늘의 내 삶을 더 값지게 한다.
행복에 취해있을 시간도 없고.
고통에 압도당할 여유도 없다.
메멘토 모리하라.
우리는 살아가기도 하고, 동시에 죽어가기도 하는 존재다.
메멘토 모리하자.
죽어가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자유의지를 가진 요상한 존재이기도 하니까.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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