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철학관>
행복은 인류의 숙제다.
어느 누구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요."라고 말한다. 삶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도 답은 대동소이하다. 이처럼 우리네는 '행복'을 강박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단언컨대, 행복의 순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이미 앞 문장에 답이 있지 않은가. '순간'은 길 수가 없다. '순간'은 '순간'이니까. 행복은 언제나 '순간'이다. 왜 우리는 이걸 깨닫지 못하는가?
바나나 먹고 체하면 약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행복의 '순간'에 취하면 답도 없다. 그 순간 하나를 붙잡으려,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려는 인류의 어리석음은 곧 불행의 씨앗이다. 순간에 머물러, 다음의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둔함은 오직 인간만의 것이다.
행복은 그러니까, '순간에 이는 감정'이다.
순간에 이는 감정이... 삶의 이유라고? 삶의 목적이라고? 행복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나, 삶의 목적과 이유가 '행복'이라고 믿고 있다면 말이다. 왜 태어났는지,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세상은 정말로 있는 건지... 아무것도 묻지 못하게 하려는 절대자의 농간에 농락당할 것인가? '행복'이라는 달콤함으로 진실의 눈을 가리려는, 그 모든 시도에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의 부조리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감정은 변동성이 크다.
나 조차도, 내 마음과 감정을 다 알 수가 없다. 이 고정되지 않은 것을 붙잡고 살기엔, 삶이 너무 버겁다.
행복아 왜 늘 도망가.
왜 나만 비껴가.
이렇게 삶을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나도 그랬다. 왜 내게 온갖 불행이 다 밀려오는 건지. 행복하게 살면 안 되는 건지. 이 허락은 누구에게서 받아야 하는 건지. 타인의 삶은 늘 행복하고, 불행은 내 삶의 주위에 늘 우두커니 서있는 것 같다는 울분에 잠을 청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누군가는, 오늘 스스로 행복하기로 선택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뱉는 그 입이 야속해 보였다.
그렇게.
행복의 순간에 잠깐 기뻐하다, 금세 사라지고 그것에 취해 또 다른 행복을 놓치는 과오를 일삼으며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행복은 좇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란 걸.
행복은 누군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는 것을.
행복이 늘 도망가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좇기 때문이다.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행복은 더 멀리 날아간다. 이미 내 안에, 내 옆에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행복은 영원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행복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다.
잠시 앉아 있다 날아가는 새와 같으며, 지저귀는 청량한 새소리를 잠시라도 마음을 열어 듣는 하나의 태도다. 행복은 좇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
그저 알아채는 것.
모든 불행은, 행복을 소유하려는 데에서 온다.
모든 행복은, 불행마저 품으려는 마음의 결심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