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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5. 2015

[너를 만난 그곳] #2. 내 연애의 기억 Part 2

혼자 있는 느낌, 혼자 남겨진 느낌이 제법 어울린다 생각했다

-8-

그녀는 꿈을 이루어 방송작가가 되었다.

다시 한번 인연이라 느낀 것은 내가 일하는 본사 건물과 그녀가 일하는 방송국 건물이 가까이 있었다는 것.
만난 지 4년이 되는 해 우리의 무대는 대학로에서 여의도로 옮겨졌다.
그 누구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좋은 시간은  계속되었다.
한강 공원과 여의도 공원, 윤중로 벚꽃 축제와 불꽃 축제는 우리를 위한 선물과 같았다.

-9-

길거리에서 큰 싸움을 했다.
사실, 그녀와 나에겐 작은... 아니 적어도 그 당시 나이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엄격하게 자란 그녀는 결혼 전 잠자리를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학생 때는 그러려니 하고 그녀를 지켜줬다.

사실, 지켜준다는 말이 맞나 모르겠다. 잠자리의 수준을 떠나 그보다 더 사랑하는 내게는, 솔직히 힘든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지켜주다니 뭘... 무언가로부터 지켜주어야 하는데, 그게 그녀를 사랑하는 바로 나라니.
젠장 할 아이러니.

그런데,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직업이 있는 다 큰 어른 둘이 사랑의 잠자리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 너와 내가 그냥 친구니? 아님 동성 선후배?" 길거리에서 소리쳤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할 정도로.

"오빠... 미안해. 나도 알아, 하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가 않아. 그게... 우리 결혼하면..." 그녀가 울먹인다.

그녀의 울먹임은 정말 나에게 미안하고, 자기도 나와 즐겁고 아름다운 밤을 보내고 싶은데,
마음속에 드는 죄책감에 너무나 속상해서임을 알고 있었다.

길거리에서의 큰 싸움은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이해해주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결혼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거리에서 나를 스쳐간 낯선 향기의 바람이 새록새록하다.

-10-

"야, 소개팅 한 번 할래?" 회사 동기가 슬쩍 물어본다.

"어허, 나 여자 친구 있는 거 몰라?"

"아이고, 의미 없다. 네 여친 방송국 작가라고 만날 밤샘하고 별로 만나지도 못하고, 또 그리 오래 사귀었으면 바람 쐴 때도 되지 않았냐?"

"미친놈!!..."

-11-

약속 장소는 홍대 입구였다.
회사 동기의 부탁이었다. 대학교 2학년 생인데 여대 다니는 귀여운 아이이며, 나가서 밥이나 한 번 사주고 오라고.

아니, 어쩌면 회사 동기의 부탁이 아니라 내가 바란 걸지도 모른다.
서로 바빠 그녀를 만난 지도 오래되었고, 만나도 밥 먹고 이야기 조금 하다 다시 서로 회사로 들어가고, 밤샘 작업이 많다 보니 항상 보는 그녀의 모습은 초췌하고 옷이며 화장이며 어느 하나 꾸민데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냥 장난 삼아 나간 곳이었다. 여대 다니는 여대생이면, 직장인한테 비싼 밥 한 번 얻어먹고 그냥 돌아서서 가겠지.
나도 곧 결혼해야 하는데, 결혼 전에 뭐 이런 경험 한 번쯤이야.

만나기로 한 장소에 걸어오는 그 아이는 작고 아담하고, 눈이 매혹적이며 입술이 도톰하게 생긴 생기 찬 얼굴이었다.
아, 나와는 나이가 8살 차이 나니, 아이라 불러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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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아이를 1년 동안이나 그녀 몰래 만났다.

처음 만난 그 날, 밥이나 한 끼 먹이고 차나 한 잔 하고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피자를 맛있게 먹고 일어선 그 아이는 자기가 밥 값을 계산했다.

'이건 뭐지?' 새로웠다. 무언가 지극하게 새로웠다.
예상외였고,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임용고시를 준비 중에 있고, 내 동기의 아는 동생이며, 또래 남자보다는 나이가 조금 있는 오빠가 좋다며 동기에게 소개팅을 부탁했더랬다.

예상외의 새로움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만들었고, 내 전화번호 뒷자리를 본 그 여대생은 나의 생일을 유추해 냈다.

"여기, 오빠 선물요. 오늘 생일 맞죠? 아님 말고요~"
어디서 많이 보던 레퍼토리인데...

만난 지 두  번째 날, 세차장의 자동 세차기가 내 차를 닦는 동안 예상 밖의 선물을 받았고, 고마움과 새롭게 느껴진 설렘은 곧바로 키스로  표현되었다.

계속해서 예상외였고,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 마음도, 그녀와 그 아이의 사랑도.

복잡한 생각과 무거운 마음에도,
분명한 것은 그 아이와의 키스가 너무나 달콤했다는 것.

-13-

우리, 나와 그 아이는 급속도로 하나가 되었다.
귀여움 속에서도 빛나는 눈동자와 매혹적인 입술은 꾹 눌러 참던 내 본능을 자극했다.
마치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 너랑 자고 싶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뱉은 말에,
"어... 오빠... 음... 잠시만요..." 그 아이는 걷던 길을 멈추고 갑자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편의점에 제모기를 사러 들어갔었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는 그 날이 첫 경험이었다는 것...

그 날 이후, 우리는 만나는 날에는 무조건 사랑을 나누었다.
아주 격렬했고, 세상에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서로를 불태웠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면, 불꽃 튀는 더없이 후회 없는 섹스는 영혼을  교류하게 했다.
온몸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에 서로의 몸과 영혼이 오가며,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도 여러 번.

그렇게, 난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14-

예식장 예약은 끝이 났고, 청첩장은 한 달 뒤에 받아보고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기로 했다.
상견례도 마쳤다.

그녀의 어머니가 내심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다.
연애 경험이 없다가 덜컥 나를 만나 오래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에 대해 마뜩지 않는 눈치다.
당신이 일찍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살아보니, 뭔가 억울하셨나 보다.

그래도, 가정환경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맘에 안 들어하시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란 생각을 했다.

-15-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결혼 준비가 한창인 그즈음, 난 그 아이와 헤어질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난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그 아이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는 것.

이것은 나에게 아주 좋은 이유였다. 헤어지기 좋은 이유.
그 아이와 헤어지고 이제 그녀와 "예정된 결혼"이나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결혼인지 해야 하는 결혼인지 혼란스럽다는 것,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아이와의 이별이 생각보다 더 마음 아팠다는 것.

-16-

그녀에게서 온 전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또박또박하고 차분했다.

"오빠, 내가 예식장 취소할게. 청첩장도 다 버렸다."

몰래 만난다고 한들,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을 것이다. 여자의 촉도 무서운 법이고.

낌새가 이상하다 느낀 그녀는 나의 이메일 계정에 접속했더란다.
다수의 모텔 영수증을 발견하고는 모든 정황의 조각을 맞추고  전화한 것이다.

"그래, 미안하다. 끊을게."

붙잡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어떠한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떠나보낸 그 아이에게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있는 느낌, 혼자 남겨진 느낌이 제법 어울린다 생각했다.
이러는 것이 마땅하다 여겼다.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고, 많이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싹싹 빌고 싶지도 않았다.

-17-

다시  연애할 수 있을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또 누군가를 만나 호감을 느끼고, 서로를 알아가고...
손을 잡고 키스하고 한 몸이 되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연애고 사랑이고 뭐고...
신경 쓰지 말아야지...

그러니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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