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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5. 2015

[너를 만난 그곳] #1. 내 연애의 기억 Part 1

짝사랑이 영혼을 잠식할 수도 있겠다

-1-

파혼.
내 연애의 기억.

6년 간의 연애였다.
누구에게나 평범해 보이는 만남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당사자인 내게는 정말 운명적이고 설레는 만남이었다.

복학한 전공 수업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당연히 대부분 나이가 나보다 어렸다.

그 어린 사람들 중에 눈길이 가는 그녀.
첫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는 아니지만, 자꾸 보니 눈에 들어오는 스타일이었다.

가랑비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젖어버리는 옷과 같이 하루하루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어느 한 날이라도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허전하고 궁금하고... 내 뒤 쪽에 앉으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혹시 나를 보고 있으려나...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난 항상 강의실 맨 뒤에 앉는 습관이 들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다소곳이 앉은 그녀의 뒷모습은 수수했지만 아름답다는 말이 무척이나 어울렸다.
올려 묶은 머리는 정갈했으며 그 아래로 드러난 목선은 마치 유럽의 어느 한 화가가 그린 이름 모를 소녀의 그것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바로 말을 붙이지 않은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같은 신입생이었다면 그저 먼저 다가가 말을 붙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복학생이란 신분은 그러기에는 뭔가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제대 하루 전 날, 무얼 하고 살아야 하나 무얼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에 잠을 못 이룬 기억이 났다.
사랑과 낭만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또 하나의 눈을 달고 나왔다.
작은 변명이자 납득이 갈만한 수준의 자기 합리화였다.

어느 날 교수님이 영화 하나를 보여 주시고는 토론 조를 짜라고 하셨다.
영화 제목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독일 영화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짝사랑이 영혼을 잠식할 수도 있겠다'

-2-

사실 죽고 못 살 정도의 짝사랑은 아니었다.
하지만, 놓치거나 아니면 어느 한 마디의 말이라도 붙여보지 못하고 보낸다면 아마 내 영혼은 잠식될 것이 뻔했다.
다만 어느 한동안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그리고 난 그것을 운명이라 믿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운을, 운명을 만든 것이라 해도 좋다.

영화 토론 조를 짤 때, 난 무작정 그녀에게 다가갔다.
물론, 내 옆에는 내 친구가 함께였다. 노골적인 접근이 아닐 수 있도록 보이게 해 준 고마운 녀석이다.
지금 그 친구는 무얼 하고 있을까. 취업은 했을까?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아니, 사랑은 하고 있을까...

-3-

웃는 모습이 참 좋았다.
가벼워 보이지도 않았고, 수줍은 듯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내게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같은 조가 되어 발표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다행이었던 점, 정말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녀의 집이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집에서 학교로 가는 같은 방향이었다.
그 당시 내게는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만남은 커다란 운명이라 믿었더랬다.

서로의 집이 지하철 1호선 끝과 끝이면 어쩌나... 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으니.
그땐 그랬다.

-4-

그녀의 이메일 주소 뒤에 붙어 있던 512라는 숫자는 내게 행운의 숫자가 되었다.
넘겨짚어 불쑥 건넨 말에 그녀는 백만 불짜리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고,
그녀도  그때부터 나에게 무언가 특별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혹시 생일이 5월  12일이에요? 그럼... 생일 축하해요, 오늘이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아무 생각 없이 써넣은 건데..."

당황한 듯, 그러나 얼굴 가득 환했던 그 미소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5-

조별 발표는 멋들어지게 잘 끝났던 것 같다.
학점도 좋게 나왔고, 사랑도 점점 커져만 갔다.

여느 캠퍼스 커플처럼 우리는 달달한 데이트를 이어갔다.
하루하루를  함께하고, 손을 잡고 강의를 듣고...
공강 시간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복학생은 잘 아는) 도서관 건물 뒤편 조그마한 정원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즐기던 김밥 한 줄과 라볶이는 진수성찬이었다.
너와 내가 있는 진수성찬.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던 행복했다.
그땐 그랬다.

-6-

그녀와 큰 문제는 없었다. 천생연분이라 믿었다.

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누나가 금전 사고를 치고는
그 피해가 나에게도 오게 되었다.

취업도 하기 전에 몇 천만 원의 빚을 떠안았다.
만져본 적도, 써 본 적도 없는 금액이었다.

보습학원 강사를 하며 모은 돈, 그리고 공모전 입상을 통해 받은 장학금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모두 쓰였다.
졸업하기 전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 위한, 아버지가 없어 남들처럼 어학연수 한 번 못 가본 나를 위한 돈이었다.

더 남은 돈을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취업도 못하게 되면...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목에 벨트를 감았다.
너무 억울한 마음에 살고 싶지 않았다.

바로  그때, 어머니와 그녀가 떠올랐다.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사시다 어려운 형편에 식당일을 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목에 감았던 벨트를 풀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알게 된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더 사랑해주고 안아주었다.
천생연분이라 믿었다.

-7-

이왕 죽으려 했던 거, 죽기 살기로 살았다.
어차피 취업 못하면 당신네들 돈 갚을 수도 없으니 시간을 주던가 말던가 하라고 했다.

다행히 시간은 주어졌고, 다른 꿈을 꿀 새도 없이 난 월급쟁이가 되었다.
당장 돈이 아쉬웠다.

2년 간 월급은 차압당했지만, 빚이 없어지는 2년 뒤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내 나이에 빚이 없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To be c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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