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철학관>
사람은 행복을 바라고, 불행을 바라지 않는다.
바람은 그토록 편향적이다. 그런데 삶은 그렇지가 않다. 삶은 균형을 이루려는 메커니즘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리가 행복보다 불행이 많다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의 바람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삶은 그러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나는 행복해야 한다'라는 생각은 대단히 오만한 것이다. 또 누군가는 '행복을 선택하기로 한다'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살자는 건 알겠는데, 도가 지나치다. 행복이 선택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그 희귀성은 소멸하고 그 소중함마저 자취를 감출 것이다.
행복해야 한다는 쏠림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 그쪽으로 쏠릴수록 삶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불행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온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더 나아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비교의식에서 온다.
불행함의 면면을 보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받아들여야 떨쳐버릴 수 있다. 떨쳐버려야 행복해질 수 있는 준비가 된다. 행복에 대한 강박, 스스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오만이. 그 어떤 것이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을 닫게 만든다.
행복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행복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불행은 거부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행은 내쫓는 게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이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야누스의 얼굴처럼 붙어 있다. 그 방향이 다를 뿐, 그들은 늘 함께 움직인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게 되고, 희망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리네 삶의 등락을 잘 들여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행복의 순간에 집착하지 말고.
불행의 지속에 좌절하지 말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과.
불행하면 안된다는 저항.
이 둘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에게 온 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를 판단하기 전에
온전히, 오롯이 그것들을 받아들여 봐야 한다.
안고 갈 것인지, 떨쳐버릴 것인지는 그다음 할 일이다.
행복이라 생각했던 것이 불행일 수 있고.
불행이라 여겼던 것이 행복일 수도 있는 게 삶이니까.
P.S
잠시 행복이지만 대체로 불행한 게 삶이란 걸 깨달으면.
생각보다 많은 걸 받아들일 수 있음과 동시에, 행복의 순간에 미련을 가지지 않고 그 짧은 순간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행복함에 자만할 필요가 없고, 불행하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살아보니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