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철학관>
'Pure'의 어원은 라틴어 'Purus'로 무언가 섞이지 않은 깨끗함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순수(純粹)'로 해석되며, 한자의 뜻을 보면 '순수할 순'에 '순수할 수'를 써 말 그대로 '순수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섞이지 않은 것'외에 '깨끗함'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섞이지 않은 것'과 '깨끗함'의 관계엔 의문을 제기한다. 섞이지 않은 것이 깨끗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며, 깨끗하다고 섞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의문 때문이다.
일전, 누군가 나에게 '너는 순수한가?'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 땅 위엔, 그 어느 누구도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순수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되묻고 싶었다. '누군가의 순수함을 의심하는 당신은 순수한가?'라고. 순수함을 거론하는 자체가 순수하지 않은 행동이란 걸, 나는 말하고 싶었다.
가장 순수한 존재는 누구인가?
섞이지 않은 존재. 아마도 갓 태어난 아기일 것이다. 반문할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아기는 순수함의 표상이다. 그것이 관념이든, 기업의 상품 홍보를 위한 이미지이든 상관없다. 각자의 가장 순수할 때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대자의 명령을 받으면, 눈을 감았다 뜸과 동시에 우리 모두는 갓 태어난 아기가 되어 있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아기는 어떤 존재인가?
밤낮이며 운다. 주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 우는가? 배고프다고, 졸리다고,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운다. 어라... 가장 순수한 존재는 이토록 이기적이다. 바꿔 말하면 '이기심'은 '순수함'이다. 왜?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갓 태어난 아기의 마음엔 '이기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기(利己)'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가, 이기적이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다. 고로,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건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본능적인 심성은 이기심에서 출발한다. 섞이지 않은 건 깨끗하다고? 똥범벅이 된 아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건, 순수하지 못하다고 일컬어지는 어른들의 몫이다.
타인의 '이기'를 섣불리 재단(裁斷)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타인의 이기를 지적하는 손가락질 중 세 개는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까, 남의 순수를 왈가왈부하는 자는 오히려 더 순수하지 못하다.
'순수'는 어느 하나의 '이상(理想)'이자, '이데아'다.
발음하는 순간, 그것을 입에 머금는 순간,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 된다. 실존한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가 아는 순수가 아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예를 이미 보지 않았는가.
순수의 역설이다.
순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급하는 순간 사라진다. 있다고 하더라도, '순수함'은 '이기심'의 다른 말이다. 이걸 기존의 관념을 바꾸어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순수함을 더럽히지 말자.
그것을 추구하지 말자.
순수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그것의 역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조금이라도 더 순수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반대로, 누군가의 순수를 왈가왈부한다면 당신은 순수에서 더 멀어질 것이다.
순수의 역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는, 함부로 순수라는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순수에 대한 모독이며.
순수에 대한 모독은 스스로 순수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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