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진짜 멕시코 이야기>
유럽 아이슬란드엔 'Geysir(게이시르)'라는 '간헐천(間歇泉)'이 있다.
더운물과 수증기, 기타 가스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온천을 말한다.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분수쇼(?)를 보며 한동안 아이들과 자리를 뜨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여전히 화산이 활동 중인 아이슬란드의 일반 숙소에서조차 수돗물에서 계란 썩은듯한 유황 냄새가 났었다.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국인이라면 알아챌 찌뿌둥한 온몸의 상태가 나로 하여금 온천을 검색하게 했다.
이곳 멕시코에서. 한국과 같은 24시간 찜질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라? 그런데 있었다. 정확히 말해 찜질방은 아니지만, 멕시코에서 가장 뜨거운 온도의 물로 운영되는 곳. 유황가스가 땅으로부터 뿜어 나와 그 수증기를 직접 쐬며 사우나를 할 수 있는 곳. 그것도 24시간으로!!!
'게이시르'와 이름이 비슷한데?
El Geiser (엘 헤이세르)
멕시코 24시간 찜질방 이름은 'El Geiser'.
발음은 스페인어로 '엘 헤이세르'라 한다. 이름 자체가 아이슬란드의 '게이시르'를 연상케 한다. '샘물이 솟아오른다'란 뜻을 가진 단어이므로,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위치는 멕시코 시티에서 약 186km 떨어진 곳에 있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51분. 거리에 비해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이런 경우는 중간중간 국도 또는 비포장 도로가 있다는 뜻이다.
당장 예약을 했다.
헤이세르는 일종의 온천 워터파크다. 안에 있는 호텔은 직접 헤이세르로 연락해 예약을 해야 한다. 호텔 중개앱이나 기타 다른 앱으로는 예약이 불가하다. 결제도 현금으로만 가능하다. 다행히 4인가족 기준 방이 남아 있었다.
헤이세르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멕시코엔 '똘란똥꼬'라는 한국인에게 더 많이 알려진 온천이 있지만 물 온도가 그리 높지 않다. 온천도 오후 8시경이면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헤이세르는 물 온도가 높고, 24시간 운영이라 언제든 뜨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 게다가, 유황 수증기 사우나라는 히든카드가 있다.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이것의 중독성은 생각보다 크다.
잠시 들러가는 마을,
Tecozautla (떼꼬자우뜰라)
멕시코 시티에서 헤이세르로 가는 길엔 '떼꼬자우뜰라'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멕시코 원주민 언어인 나우아틀어로 '노란 흙이 풍부한 곳'이란 뜻이다. 멕시코 관광청이 지정하는 '뿌에블로 마히코(Pueblo Mágico), 작가주: 마술 마을' 중 하나다. 아주 작고 아기자기한 곳이다. 헤이세르 내 호텔 체크인 시간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하므로, 점심은 이곳에 들러 먹으면 좋다.
여행의 묘미는 식도락 아닌가.
게다가 또 하나의 묘미는 우리네 노포집을 찾는 것처럼, 정보를 보지 않고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말 그대로 느낌적인 느낌에 따라 식당을 향해보는 것이다.
발길이 닿은 곳은 'Restaurante Doña Esperancita'란 곳이었다.
영어로 치자면 Mrs.Hope를 말하며, 내부는 성모(聖母)의 흔적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이 작은 마을에 온 아시아인들을 의식하지 않는 척 슬쩍슬쩍 곁눈질했다. 주문을 받는 직원도 호기심과 언어에 대한 경계(?)를 하는듯했으나 스페인어를 말하는 나를 보고는 안도의 눈빛을 보냈다.
음식 맛은 어땠을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샐러드는 싱싱했고, 채끝 소고기가 올라간 칠라낄레와 몰레와 살사가 듬뿍 들어간 엔칠라다는 허기진 우리 가족의 속은 물론 입안 가득 즐거움을 선사했다.
멕시코 마을은 알록달록한 색감이 참 좋다.
원색으로 칠해진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 서로 간의 조화를 이룬다. 중간중간 있는 크지 않은 카페들도 매력적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거리를 거닐고. 달달한 음료로 목을 축이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가족들과 함께라 더 좋다. 이러한 시간과 순간에 나는 감사할 뿐이다. 감사한 마음에 양 입 꼬리가 올라간다.
24시간 찜질방 시작!
드디어 헤이세르에 도착했다.
호텔 키를 받아 든다. 24시간이라고 하니, 이미 머릿속엔 새벽과 다음 날 아침에도 온천을 즐길 생각을 한다. 우리가 도착한 대낮 시간의 기온은 무려 30도.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처럼 습한 날씨가 아니기 때문에,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오히려 몸에 달라붙는 수영복이 차갑게 느껴질 정도다.
우선 전체를 크게 둘러본다.
크게 세 가지 구역으로 운영이 되는데,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온천 풀. 평지에 깔린 유아풀. 그리고 대망의 유황 수증기 사우나가 그것이다.
물의 온도는 딱 적당한 정도다.
이른 새벽 솟아오르는 물의 온도는 80도로 들어갈 수 없을 수준이지만 천천히 식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다. 꼭대기 층의 물이 가장 뜨겁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물의 온도는 낮아진다. 물은 미네랄, 칼슘, 마그네슘이 풍부한 푸른빛 온천물은 피부를 금세 매끈하게 만든다. 물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둥둥 떠 다니는 유유자적의 여유를 부리다 보면 이곳이 지상낙원이란 생각까지 든다.
중독성 가득!
유황 수증기 사우나!
파도 놀이를 해봤을 것이다.
아이들과 바다에 갔을 때, 아이들은 파도에 발을 적시며 몇 시간이고 논다. 그게 뭐라고... 했다가 나 또한 파도 놀이 삼매경에 빠질 때가 많다. 파도의 움직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발에 젖을 것 것 같다고 젖지 않고, 젖지 않을 것 같다가 젖는 그 놀이는 단순하지만, 대개 중독은 단순함에서 오기 마련이다.
유황 수증기 사우나도 그렇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수증기가 왔다 갔다, 올 듯 오지 않을 듯. 그러나 세게 오고 나면 사람들은 즐거운 아비규환(?)으로 흩어진다. 생각보다 뜨겁다. 수건으로 몸을 보호하는 게 좋다. 자칫 잘못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매력은 상상 이상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Que rico!'를 연발한다.
표면적인 뜻은 '맛있다'란 뜻이지만, 매우 만족스러울 때 멕시코 사람들이 내어 놓는 감탄사다.
아침 6시.
잠든 가족을 뒤로하고, 홀로 온천으로 향했다. 어스름한 새벽하늘색과 사늘한 공기 내음이 좋았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나 생각을 많이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따뜻한 물의 온도에 집중하기로. 해야 할 것도 많고,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많은 것이 있지만 잠깐이라도 물에 둥둥 떠 그 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누군가 나에게 멕시코에서 1박 2일로 갈만한 곳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몇 번이고 헤이세르를 추천할 것이다.
이곳은 술 반입이 금지고, 가족들 단위로 오기 때문에 치안도 좋다. 멕시코에선 24시간 마음 놓고 여행할 곳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인의 찌뿌둥함을 달래주고도 남을 많은 것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너무나 매력적이다. 너무 좋으면 표현이 단순해진다. 단순한 표현을 해서라도 나는 이곳을 칭찬하고 추천하고 싶다.
또 어느 날, 찌뿌둥함이 찾아온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마음속,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는 건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당장 가진 못하더라도, 생각으론 이미 그곳에 도달하여 몸을 둥둥 띄울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