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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11. 2024

내 실천력의 원동력은 글쓰기

<스테르담 글쓰기>

꾸준함, 실천력과 거리가 멀었던 나를 그것들과 조금은 더 가깝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글쓰기다.

나는 매사가 산만하다. 이걸 하고 있으면서 저걸 떠올리고, 저걸 떠올리며 다른 걸 시작하고. 멀티 태스킹이나 멀티 플레이어로 간혹 포장될 때가 있긴 하고, 정말로 그렇게 함으로써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어쩐지 무언가를 진득하고 꾸준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은 지워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글쓰기가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다.

먼저는 쏟아내기였다. 내 안에 맺힌 것들이 그리도 많았을까. 세상의 풍파는 어찌어찌 막을 수 있었지만, 내 안에서 터져 나가려는 봇물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쏟아내고 또 쏟아내었다. 그것들은 활자로 형상화되어 실체가 되었다. 글이 되고, 책이 되고, 콘텐츠가 되고. 내 생각과 의지가 사라진다 한 들 그것들은 종이에 인쇄되어 나를 다그친다. 쏟아낸 많은 것들은 정리가 되고, 정리가 된 글들은 나를 정리한다. 정리된 나는 다시 조금은 더 정돈된 글을 쓴다. 선순환이다. 글쓰기의 선물이기도 하다.


누군가 쓰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무언가를 써 놓고, 이루어질 거야... 라며 끌어당김의 법칙을 맹신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 된다. 그러나, 무언가를 쓰고 나면 자신이 쓴 글을 따르려는 의지가 생긴다. 정성을 다해 써야 하고 진심을 다해 내어 놓아야 한다. 그러면 맞는 말이 된다.

쓰기만 하고 기다릴 것인가, 실천할 것을 쓸 것이냐.


서두에 언급했듯, 내 실천력은 내가 쓴 글에서 온다.

자신을 돌아보자고, 스스로를 챙기자고. 사색하고 읽고 쓰자고. 그렇게 매일을 쓰는데, 내가 그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은 첫 독자인 나 자신을 움직일 수 없고, 나 조차도 움직이지 못하는 글은 타인에게 가 닿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활자의 나열일 뿐, 그러한 글은 쓸 일말의 가치조차 없다.


내가 쓴 글은 살아 있다.

숨을 쉰다. 움직이고 요동한다. 내 기억과 마음속에 상존한다. 진심과 양심과 결부되어, 그것들은 기어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가 써 놓고, 내가 실천하지 않는 글에 나는 일종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반대로, 실천하고 추구하는 것들에 대해 쓰고, 그것을 강화해 나아가는 나에게는 자부심을 느낀다. 강한 자기 효용감. 자기 효능감. 나의 쓸모를 타인에게서 찾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


그래서다.

내가 멈추지 않고 쓰는 이유. 쓰지 않을 이유를 들이댈 수가 없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실천의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내 삶 그 자체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것들은 살아 숨 쉬며,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으니.


누군가 나에게 왜 쓰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에게 왜 쓰지 않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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