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Jun 01. 2024

글쓰기에 대한 3 가지 정의 (글쓰기는 OO다!)

<스테르담 자아를 찾아가는 글쓰기>

무언가에 골똘하다 보면 그것에 대해 정의(定義)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이 나는 참 좋다. 어떤 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싶다는 욕구는, 대상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보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 이는, 자아를 돌보지 못한 시간과 비례한다. 자아를 돌아보지 못한다는 건, 스스로를 잊고 살아간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몰라 공허한 마음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그렇게 내게 왔다.

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좀 더 챙기라고. 숨 쉬라고.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뭣도 모르고 써 내려간 글이, 이제는 나를 치유하고 있다. 쓰고 있는 글은 내 존재를 증명하며, 앞으로 쓸 글들도 한가득이라 당분간은 공허한 눈매로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또한, 그것을 정의해 본다. 정의를 하라면 수 백, 수 천 개로도 할 수 있지만, 이번엔 딱 3개만 하려 한다. 


첫째, 글쓰기는 내 마음속 무대에 자아를 올려 묻고 답하는 고결한 행위다.


두 가지를 묻고 싶다.

첫째, 당신은 대답을 많이 하며 사는가, 질문을 많이 하며 사는가.

둘째, 마음속 무대 위 의자엔 누가 앉아 있는가.


우리가 받아온 교육은, 대답형 인재를 길러내기 위함이다.

정답을 찾아야 하고, 다른 걸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시스템 속에 살아왔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직장에서 우리는 상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찾고 있지 않는가. 뭐, 나쁘지 않다. 그래서 속도감 있는 발전을 해오지 않았나.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드는 생각은, 답을 찾는다고 해서 인생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며 모두가 성공에 이르진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과 성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제야. 이제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에게 적잖이 놀랐다. 

아, 나도 질문할 수 있는 존재구나. 


또 하나.

내 마음속 무대 위, 의자엔 항상 다른 무언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욕심, 질투, 시기, 슬픔, 우울... 때론 아무것도 앉아 있지 않은 공허한 장소. 그 자리를 왜 나는 비워두고 있는 걸까. 뚜벅뚜벅 무대 위로 올라가 의자 위에 앉는다. 무대 위의 나. 객석의 나. 자연스러운 소통이 일어난다. 정답만을 찾으려 동분서주하던 존재가 서로를 마주 보고,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답한다. 이전엔 느끼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때론 얼싸안고 웃고, 웃는다. 평생 싸워오던 존재가 힘을 합쳐 잘 살아보자고 화해하며 한 곳을 바라본다.


이 모든 건, 글쓰기라는 고결한 행위로 가능한 일이다.

질문은 스스로를 향하고, 대답하는 스스로는 또 다른 자아에게 힘을 북돋는다.


둘째, 기적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기적이 되는 순간을 덤덤히 써 내려가는 기록이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일상을 달리 보는 법이다.

고만고만했던, 지겹기만 했던 일상이 달리 보인다. 글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뭔가 특별한 걸 써야지...라고 생각했을 땐 써지지 않던 글이, 일상을 다시 바라보니 비로소 쓸 것이 넘쳐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은 일상을 떠나보면 안다.

그 모든 것이 기적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기적은 일상이고.

일상은 기적이다.


이 당연하고, 특별한 의미를 글쓰기 전엔 알지 못했다.

기적에 요동하지 않고. 일상에 지겨워하지 말고. 기적과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글쓰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르다. 


써 보면 안다. 

기적에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일상도 특별하고 소중하게 다루는 법을 알게 된다.


셋째, 글쓰기는 삶쓰기다.


종합하여 정의하면, '글쓰기는 삶쓰기'다.

글을 쓰는 나는 어느 하나의 존재이며, 존재의 사명은 살아가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자의와 타의가 뒤섞인 요망한 개념이며, 이 개념에 대한 회의가 들 때 존재는 요동하는데. 이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무엇을 쓰는가, 결국 우리는 '삶'을 쓰게 되어 있다. 그래서 써야 한다. 내 삶을 들여다보려면, 기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활자로 남겨지지 않은 것들은 추상적이며, 추상적인 것들은 그 뜻에 충실하여 곧 휘발한다. 기록되지 않고, 남겨지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못 박아도 좋다.


다시, '글쓰기는 삶쓰기'다.

잘 살려면, 잘 써야 한다. 나를 알려면, 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답하려면 써야 한다.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내 이야기, 내 삶에 대해 진솔하고 지독하게 남겨야 한다. 필력을 운운하며 글쓰기의 정의를 왜곡하는 사람들에 나는 반기를 든다. 글쓰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 놓는 것이며. 평가받을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활자엔 힘이 있다.

그 힘을 싣는 건, 쓰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 자체는 힘이 없지만, 그것이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 큰 힘을 실으려면 진솔함을 담아야 한다. 진솔함은 내 이야기를 쓰는 것에서 온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고, 알기 어렵더라도 파고들어 마음속 진정한 나를 기어이 만나야 한다. 일생일대, 한 번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나를 잘 알지도 못한 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 채. 그렇게 평생을 산다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글쓰기에 대한 정의를, 꼭 해보시길.

아니. 우선 쓰시길. 채우려 하지 말고, 내어 놓으시길. 그리하여 꽁꽁 감춰져 있던 자아를 만나보시길.


글쓰기에 대한 정의를, 수 백개 할 수 있는 그날이 곧 오기를.

삶으로 각자의 글을, 글로 각자의 삶을 제대로 증명하길.


나를 포함하여 쓰는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아들아, 나는 너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딱 좋은 시간, 지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