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중년과 에세이>
지난날, 많은 책을 읽지 못함을 나는 후회한다.
꾸준하고 진득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느낀 부러움과 시샘을 쌓으면 우주에 닿을까. 그렇게 나는 책을 읽지 않으면서 자꾸만 나 자신을 쪼아갔다.
그런 나도 책에 몰두한 적이 있긴 하다.
군대에서였다. 혈기왕성한 한 사내가 계급이 올라감으로 찾아온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몇 없었는데, 내게는 그것이 독서였다. 몸이 갇힌 곳에서,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내무반 한쪽에 커다랗게 서있는 책장의 모든 책을 섭렵했고, 그것도 모자라 옆 소대에서 가져온 책을 계속 읽었다. 정신은 갇힌 게 아니라는 발버둥을 그렇게 쳤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 책들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책을 읽으며 영혼의 뒤통수를 맞아 얻은 깨달음들이 내 정신과 몸에 조금은 내재화되어 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막연한 결론을 스스로 내어 본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지나온 삶이란 게 그렇게 기억나지 않는 책과 같다.
수 십 년을 살아왔는데, 간혹 올라오는 기억들만이 드문드문할 뿐. 구체적으로 내 인생 전반을 기억할 수 없다.
책을 읽고도 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허투루 읽어서 일까.
그렇다면, 지나온 삶이 또렷하지 않은 것 또한 허투루 살아와서 일까.
밑줄 그어가며 필사를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들이 남는 것처럼, 내 인생에 밑줄을 그어가며 더 진지하게 살았어야 했나 나는 후회하고 나를 자책한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나'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도 좋고, 그 내용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그래서 그 생각을 읽고 싶고, 나이가 들어 내 몸의 변화는 어떠한지. 나는 내 몸을 읽고 싶다.
생각해보면, 책은 나를 위해 읽는 것인데 정작 나는 나 스스로를 읽지 않아 왔으니 책을 읽어도 남는 게 없던 게 아닐까.
내가 나를 규정하지 못하고, 삶의 방향이 모호했던 그때. 책을 읽으며 얻은 게 많긴 하겠지만, 만약 내가 좀 더 나를 읽고 더 이해했더라면 오히려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더 컸을 거라 믿는다. 그 책 내용들이 또렷이 기억나기도 하면서.
이제는 '나'를 읽어야 할 때다.
내 '삶'을 읽어야 할 때다. 내 '생각'과 '몸' 그리고 '욕구'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어디로 흘러 가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젠 나를 (예전보다) 좀 더 사랑할 때가 된 것이다.
더 이상, 허투루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