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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3. 2024

동안(童顔)이란 말이 반갑지 않다.

<스테르담 중년과 에세이>

간혹, (아마도 인사치레를 포함하여) "동안이시네요."란 말을 듣는다.

고백하건대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일까. 젊어 보이려 노력했던 날들이 분명 있었다. 서점에서 사지도 않을 패션 잡지를 들추어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는 옷의 힌트를 얻으려 했고, 피부를 좋게 할 몇 가지 방법을 수소문했으며, 요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 여러 경로를 통해 신조어나 인기 있는 가수를 검색하기도 했다. 내심 만나는 사람들이 젊게 봐주길 기대한 것이다.


'동안(童顔)'은 '아이와 같은 얼굴'을 말한다.

중년이 훌쩍 지나 아이의 얼굴을 바라다니. 젊어 보이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고, 고전부터 전해지는 만인의 바람이 젊음이라는 것은 만국 공통이나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은 비단 어려 보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천진스럽고 순수함을 담은 그것이 진정한 뜻일 텐데, 세상 풍파를 정통으로 맞은 중년에게 천진함과 순수함이 얼굴에 담길 리 만무하다.


고로, 동안을 바라는 건 그 자체로 무리수란 게 내 결론이다.


이미 어린 사람에게 우리는 동안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이미 젊은 사람에게 당신은 젊게 산다고 말하지 않는다.


'동안이시네요...'란 말을 듣는 그 순간 자체가, 이미 나이 들었단 의미다.

'생각보다 어려 보이시네요.'란 말은,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란 말의 다른 표현이다.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좋은 의도로 말씀하여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 다만, 내가 조심하려 하는 건 그 말에 중심을 못 잡고, 젊게(만) 보이려 외모에만 집중하는 나 자신이다.


젊게 입고, 유행을 신고, 트렌드를 떠벌린다고 그것을 젊음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젊음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나이가 적고 혈기가 왕성한 상태'를 말한다. 사람은 기승전결의 생명체라, 특정 나이에 머무를 수 없고 또한 늘 혈기왕성할 수가 없다. 


가수 이상은 씨의 '언젠가는'이란 가사가 떠오른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젊음은 인위적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모르고 지나가야 젊음이다.

젊을 땐, 젊기에. 그러하기에 젊음을 모른다. 이 얼마나 삶의 역설을 잘 표현하고 있는가. 이 역설을 그대로 대입하면, 젊음을 의도할 때 우리는 이미 젊지 않은 것이다.


동안이라 인사를 건네는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반갑진 않다. 이미 젊지 않은 나를 들춰내는 것 같아서. 혹시라도 겉멋에만 치중하는 바보짓을 반복할까 봐서.


젊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려 한다.

나이에 맞게, 때론 철없게. 지혜롭게, 때론 어수룩하게.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살다 보면 젊은 날을 회상하며 웃고, 앞으로 올 젊지 않을 날 또한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동안(童顔)보단, 동심(童心)이 더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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