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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9. 2016

승전 또한 비참했던 '워털루'에서

벨기에 워털루, 그 1815년의 기억 속


- 여정 -

네덜란드 To 룩셈부르크 (404km, 1박)
룩셈부르크 To 벨기에 워털루 (212km)
벨기에 워털루 To 네덜란드 (220km)



"워털루가 어디지?"


부끄러운 무식함을 고백하자면 난 워털루가 어딘지 몰랐다. 아니, 영국이라 생각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영국군과 프랑스군. 그리고 영국에 오가며 봤던 '워털루 역'에 의해 난 자연스럽게 워털루가 영국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알고 있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워털루가 내 관할국인 베네룩스 벨기에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새로움과 부끄러움이 수십 번을 교차했다. 제발, 나만 그런 게 아니기를... 많은 사람들도 영국으로 알고 있었기를. 변명이 궁색하다.


룩셈부르크에서 워털루로,
그리고 자동차 여행


룩셈부르크는 작다. 그래서 사방이 국경이다. 왼쪽 위로는 벨기에, 우로는 독일. 그래고 아래에는 프랑스가 있다. 룩셈부르크 여행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일요일 아침은 네덜란드 집으로 이동하는 길에 어디 한 곳을 들르고자 했다. 이곳저곳 동선과 그간 가보지 못한 곳을 고민하다 보니 '워털루'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한 번은 가볼 요량이었다. 영국에 있었는 줄 알았다는 미안함도 한 몫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해줄 겸.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이란 있어선 안 되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 급선무다.


룩셈부르크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여 킬로를 달리면 워털루가 나온다. 유럽에서의 운전은 그리 힘들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다. 트렁크에 이것저것 싣고 가족 여행을 하면 참 즐겁다. 비행기 여행과는 또 다르다. 가져가고 싶은 것은 마음껏 가져가니 마음도 한결 풍족하다. 나와 와이프는 주로 먹는 걸 챙긴다. 주로 한식이다. 가끔은 양념도 챙기곤 하는데, 다른 곳의 마트를 구경하고 물건을 사는 것을 와이프는 즐긴다. 한 번은 이태리 마트에서 곱창을 팔아 그것을 사다 매콤한 곱창 볶음을 해먹은 적도 있다. 그러한 묘미를 즐기는 것이다. 아이들은 각자 한 녀석 당 5개의 장난감을 챙길 수 있다. 아침 늦잠을 자던 녀석들. 또 가족여행이냐며 눈뜨기를 거부하던 녀석들도, 각자 원하는 장난감 5개씩을 챙기란 말에 벌떡 일어나 능숙하게 캐리어 가방에 챙기곤 한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그리고 그 가방은 녀석들의 몫이다. 잘 챙기고 끌고 다녀야 한다.


운전은 나의 몫이다. 와이프도 운전을 하지만 고속도로 운전은 능숙하지 못하다. 사실, 나도 맘이 편치 않다. 가족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니 내가 힘들어도 눈에 불을 켜고 운전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주재 기간 동안 지금까지 매년 막바지에는 열흘 정도의 유럽 자동차 여행을 한다. 14년, 15년 겨울 모두 각각 4,000킬로 미터를 달려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때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운전을 하며 멍해지는 그 순간은 오롯이 혼자 있는 나만의 시간이 되는 매력이 있다. 하는 일과 인생을 반추하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여행을, 자동차 여행을 가는지 모른다. 도로 곳곳에서 만나는 유럽 사람들 또한 다르지 않다. 왜건 형태의 차 뒤에는 짐 한가득 쌓아놓고 여기저기를 여행한다. 캐러반을 끌고 다니는 것은 다반사다. 힘들고 결국 집에 와서 집이 최고다를 외치지만, 가족 간에 쌓인 여행의 피곤함은 추억으로 아로새겨진다. 그리고 녀석들이 커서 가족여행을 완강히 거부할 그 날 이전에, 가족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중에 녀석들이 그때 정말 좋았음을 깨닫고, 그 녀석들의 자식들에게 또 다른 가족 여행을 선물해줄 수 있도록.


1815년 6월 18일의 기억


Lion's Mound 그리고 Panorama & Visitor's Center. 배틀필드라고 알려진 워털루에 위치한 기념비와 박물관은 허허벌판인 워털루를 생기 있게 한다. 전장(배틀필드)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곳은 사방이 허허벌판이다. 일부러 남겨둔 것인지, 아니면 농작물을 위한 땅과 공터로 남을 수밖에 없는 가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연간 몇 회에 걸쳐 워털루 전투를 재연하고 고증하려는 노력을 보면 의미 있게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어느 한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내리면 저기 둥그런 파노라마 뮤지엄과 사자의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가 올라야 할 길쭉한 계단도 위용을 자랑한다. 뮤지엄 입구에는 '1815년의 기억'이란 문구가 박혀있다.

사자의 언덕과 파노라마 뮤지엄
둥글게 만든 이유가 있다. 이름 그대로 파노라마로 워털루 전투를 보여준다.
박물관 안 기념품.
꽤 장엄하다.
연합군을 상징하는 사자


재밌는 것은 워털루 전투에서 말하는 '전투'는 이곳에서 치러지지 않았다. 실제 전투는 남쪽 5km 정도 떨어진 몽생장 고지에서 일어났었다. 워털루는 영국군의 주둔 마을이었다. 그럼에도 이 전투의 이름이 훗날 '워털루 전투'로 이름 지어진 것은 승자의 선택이었다. 당시 패전한 프랑스는 이를 '몽생장 전투'라고 명명했고, 독일에서는 자신들의 지원으로 이긴 이 전투를 '아름다운 동맹 전투'라 칭하기도 했다. 전쟁의 역사마저도 저마다의 의견과 이권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참 씁쓸하게 흥미롭다.

워털루 전투를 재연하는 행사를 촬영한 사진
저 뒤에 화염이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박물관이 원통형인 이유. 360도 파노라마로 전투를 보여준다.
들려오는 소리가 제법 실감난다.


"연합군과 그 승리의 상징. 사자 언덕"


226계단. 오르고 또 올라간다. 중간에 약 2번 정도 다리의 뻐근함으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괜스레 그러고 싶지 않고 오기를 부린다. 아이들도 신나서 올라가다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째 체력이 나보다 더 좋은 듯하다. 그래 어린것도 젊은것이라 칭할 수 있겠다. 원래는 언덕배기를 보자마자 뛰어가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혼났다. 오를 곳이 있으면 무턱대고 오르는 아이들의 저 천친 난만함과 밑도 끝도 없는 용기를 나이를 들어가며 잃어가는 듯하다. '안된다는 것'과 또 '올라가서 내려올 때를 걱정'하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래도 룰은 룰이니 아이들에게 잘 설명해 계단으로 올랐다.


일단 달리고 보는 아이들.
룰은 룰이니 계단을 이용.
226개의 계단. 위에서보면 또 다르다.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와 바람이 가을의 것들을 툭툭 던지고 날아간다. 사방은 그저 들판으로 가득하다. 어째 전쟁이 일어난 곳이나 주둔지였다는 것이 이해가 되면서도 실감은 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설명하려니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에 입이 다물어진다. 그건 아래 박물관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고.


사방이 평야다.
여기도, 저기도 평야. 전투하기 참 좋은(?) 곳.
사자와 하늘이 맞닿아 있다.
둘째는 키가 작아 망원경으로 하늘만 본다.


나폴레옹의 흔적, 그리고 승전의 비참함


1815년 그때, 전투 전후의 날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유럽의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 빅토르 위고는 자신의 소설에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9시 시작되었어야 할 전투는 비로 인해 11시경으로 미뤄진다. 나폴레옹의 명이었다. 바로 이것이 가장 큰 패전 요인으로 꼽힌다. 연합군의 지원부대가 합세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우리는 '워털루 전투'하면 나폴레옹을 먼저 떠올린다. 패전의 장수였는데도 말이다. 그가 대단했던 인물이고 또 그의 마지막 전투였다는데 의의가 있겠지만, 그래도 승자인 웰링턴 장군의 이름은 낯설 정도다. 아래 박물관을 둘러볼 때도 온통 나폴레옹의 흔적뿐이다. 나폴레옹 박물관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



더불어, 워털루 전쟁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는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있다. 더불어 워털루 전투 그 날의 기록을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3D 영화도 상영한다. 3D 안경을 착용하고 들어선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다하지 못한 전쟁의 참혹함과 워털루 전투의 이야기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소리가 커지고 눈 앞으로 달려오는 말들에 아이들은 잠시 놀라 내 손을 꼭 붙들기도 한다. 잠시 생각해본다. 정말 전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가족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워털루 전투의 하루. 시간 순으로 재구성하여 쉽게 설명한다.


"Nothing except a battle lost can be half so melancholy as a battle won"


박물관 투어 막바지. 그간 보이지 않던 웰링턴 장군의 말이 뇌리에 세게 박혔다. 그동안 나폴레옹의 그림자에 가려있다가 막판에 툭 던진 한 마디에 온 몸에 전율이 도는 듯했다. 아직은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에게도 전해준 이 말. 자고로 손자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라 했다. 거꾸로 달린 말의 다리는 앞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건장한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빨간 바탕에 기묘한 자세로 매달린 이 동물의 발굽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승자든. 패자든 상관없이.



"패전같이 비참한 것은 없지만 승전 또한 비참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 박물관의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다. 그것도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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