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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25. 2024

짬뽕에 대한 고찰

<스테르담 에세이>

출장 중 비행기에서 영화 한 편을 봤다.

영화 제목을 공개하고 싶진 않다. 너무나도 재미없는, 아니 재미없음을 넘어 영화의 정체성을 잃어만가는 내용 전개에 할 말을 잃어, 혹시라도 그 영화와 관계자에게 폐(?)가 될까 봐.


재밌는 건,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는 '짬뽕'에게 폐를 끼쳤다.

짬뽕은 참 맛있다. 자장과 짬뽕 사이에서 한 번이라도 고민을 한 사람이 있다면 절절하게 공감할 것이다. 달달하고 꾸덕한 자장도 좋지만,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에 대한 욕망은 결국 짬짜면이란 세기의 발명품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맛있게 섞였다면 뭐라 할 말이 없지...


'짬뽕'은 무언가를 마구 섞었단 뜻으로도 사용된다.

'웃기는 짬뽕'이란 말은, 무언가 대단히 꼬여 있는 사람을 표현한다. 영화가 그랬다. 웃기는 짬뽕. 이것저것 섞는 게 짬뽕의 본연이라지만, 제대로 섞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된다. 아니, 어쩌면 음식 쓰레기가 될 지도. 마구 섞었다고 짬뽕이 되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레시피로 섞어내야 우리가 짬뽕이라고 부르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개연성 없이 마구 섞은 영화를 보며, 짬뽕의 의미에 대해 고찰했다. 주인공의 정체성과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를 산발하게 만든 그 저의가 무엇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삶은 짬뽕과 같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짬뽕이란 이야기다.

그것도 웃기는. 아무리 폭망한 영화라도 기승전결은 있고, 러닝타임 내에 어찌 되었건 이야기는 마무리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삶은 그렇지 않다. 개연성 없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나고, 의도한 것보단 그러하지 않은 이야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정체성'이다.

아무리 이리 섞고 저리 섞어도, 짬뽕의 맛을 내면 된다. 우리가 기대한 그 맛. 그 칼칼함. 그 시원함. 각자의 입맛에 맞는.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다면 재료와 레시피는 아무래도 좋다. 바꿔 말하면, 나만의 재료와 레시피로는 어떤 짬뽕을 만들어도 좋은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무엇을 섞어내고 있는가.

의도대로 섞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들을 다루고 있는가. 정체성은 지켜질 것이며, 내가 원하는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온갖 잡다한 생각이 마구 뒤섞였다.


마치, 짬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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