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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28. 2016

일 못하는 사람의 유형

어쩌면 인생을 좀 더 잘 살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중요한 기회일지도

일을 못한다는 건 뭘까?

솔직해져 보자. 나는, 당신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일까? 지난 글  '일 잘하는 사람의 유형'에서 짚어본 것 중 몇 가지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때로 역발상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가져야 하고 무엇을 노력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반대의 것도 돌아보는 것. 즉, 버려야 하거나 피해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 주위엔 배울 것들이 매우 많다. 배움은 '저렇게 해야지'란 것도 있지만,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것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 사람은 배움이 도처에 널려 있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부류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 '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대부분은 관대한 점수를 줄 것이다. 최소한 잘한다는 말은 떳떳하게 못 해도, '에이, 나는 일을 못하지는 않아'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못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일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는 상대방이 더 잘 안다.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데 인색한 우리네 문화 속에서, 만약 일 잘한다는 평판이 나오면 그 사람은 일을 정말 잘 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평이 좋지 않다면 겸허히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니라고 부정만 하다가는 스스로 침잠할 가능성만 커진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말에 100% 휘둘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들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망가뜨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아니라면 그 말들의 대부분은 '객관성'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관대한 나 스스로의 평가와, '객관성'을 가진 다른 사람의 평을 조합하여 나를 돌아보면 된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일 잘하는 사람의 유형' 또한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보며 느낀 것들의 조합이었다. 실제로, 그 누군가를 떠올리며 썼던 내용들이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셈이다.


직장 인연과 업무 능력(일)의 상관관계

직장이라 할지라도, 우리 주위엔 좋은 사람들이 매우 많다. 형과 누나, 오빠와 언니의 호칭도 불사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편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직장생활의 조그마한 낙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소가 '직장'이란 문제가 있다. 일로 엮어진 사람들에게 '일'은 기본 전제여야 한다. 아무리 호형호제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새벽까지 어깨동무를 하며 간밤의 숙취를 이른 아침 같이 푸는 의리로 엮인 사람들일지라도, 현업에서 함께 일하다 서로 실망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어쩌면 친할수록 서로 일을 잘해야 할지 모른다. 그 친분을 더욱더 공고히 하려면 말이다. 나 또한 실제로 친한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구분해서 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전에도 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쉬운 설명을 위해 아래 표로 요약해 본다. 아마 표를 보면 바로 느낌이 올 것이다.  (참고 글: "직장 인연")


"직장인연 4분면" by Sterdam


물론, 이보다 더 재치 있게 설명해 놓은 도 있다. 일명 '호사분면'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좀 더 '상사'와의 인연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상사나 동료, 후배 사원들에게 모두 '호로 XX'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846053&year=2015


일 못하는 사람의 유형

이전 글에서 예고했듯이, 이번엔 일 못하는 사람들의 유형에 대해 열거해보고자 한다. 실제로 오랜 직장생활에서 만난 누군가와, 마주친 상황들을 떠올리며 정리한 것이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함께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공자가 말했다. 이는 스승의 존재 여부를 떠나, 내가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렇게 해야지'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모두 우리가 깨달아야 할 무엇이다. 그저 다른 사람의 평가에만 급급하지 말고 그것을 보고 난 우리는 무엇을 '깨고 알아야'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래의 열거들은 누군가를 향한 평가라기보다는 '저렇게 되면 안 되겠다'라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첫째, 싸움 왕 (vs. 협상 왕)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 사람들은 '협상 왕'에 반대되는 사람들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즉,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싸움도 불사하지만 실제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또는 열 개를 얻을 수 있는 것도 하나 이하를 얻게 되는 사람들이다. 목소리가 크고, 타 부서나 사람들의 요청들을 모두 '공격'으로 간주한다. 회의에 참석하고 나오면 씩씩거리며 타 부서 누군가의 이름에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역지사지란 없다. 그저 내가 당장 불편하고 내가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 유형이다. 유관부나, 팀 내 사람까지 갈무리하고 편을 나누어 팀워크를 확실히 망가뜨리는 역할에 능수능란하다.

보통 이러한 사람들은 향후에 언급할 '무지(無知) 왕'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싸움 왕'인 A 차장은 평소에 부서 업무에 관심이 없다. 어쩌다 팀대 팀 회의에 들어갔다가 높은 분이 있는 공개 석상에서 상대팀의 B과장에게 질문을 받았다. 업무에 관심이 없으니 알리가 없다. 결국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A차장은 회의가 끝나고 자신이 업무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깨달았을까? 천만에. 자신의 부족함은 생각지 않고 질문한 사람을 '공격자'로 간주, 다음 회의에서 B과장을 어떻게 짓밟은 것인가를 고민한다.

또 다른 '싸움 왕'도 존재한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키스를 책으로 배운' 케이스다. 목소리가 크거나 전화로 상대팀과 고성을 오가며 싸우는 것이 '일을 잘. 한. 다.'라고 착각한 경우다. 실제로 3년 정도 입사가 늦은 한 후배가 그랬다. 업무 전화의 80%는 고성이 오간다. 같은 층 사무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며 놀란다. 물론,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또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씩씩거리며 전화기를 부술 듯 끊은 그 후배는 가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저 잘했죠?'라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편 들어주기가 참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싸움 왕'은 '협상 왕'과 반대되는 유형으로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이나 손해에만 혈안이 되어 전체적인 팀워크를 저해한다. 일의 효율은 물론, 유관부서와의 사이도 좋지 않기 때문에 개인뿐만 아니라 팀 전체를 손해 보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 '싸움 왕'이 파트리더나 팀장 자리에 앉게 되면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할 것은 뻔한 일이다.


둘째, 불통 왕 (vs. 소통 왕)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금 인용한다. '말해 무엇할까, 소통은 직장 생활의 처음이자 끝이다!' 사실, 이는 직장생활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금의 시대 상황을 보면 '불통'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몸소 체험하고 있다.

'불통 왕'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모든 소통에 답이 없는 사람', 둘째 '자신의 고집에 싸여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첫째 유형은 '일 못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성실성'과 '빠른 응답'은 일 잘하는 사람의 기본 요소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성실성'과 '빠른 응답'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모든 소통에 답이 없는 사람'은 일에 대한 열정이 없거나, 업무를 잘 모르거나, 게으른 경우가 많다. '일 못하는 사람의 유형'을 쉽게 설명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나보다 2년 앞선 한 선배는 위 세 가지를 아우르는데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효과적인 소통 방법'도 모른다. 유관 부서에서는 항상 클레임이 날아온다. 업무에 대한 클레임을 넘어 담당자 교체를 원하는 '치명적인' 클레임이다. 일은 해결 못하더라도 언제까지 지원하겠다는 귀띔만 해줘도 일이 이 정도로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답도 없는 데다, 대면/ 서면/ 전화/ 이메일/ 보고 등의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니 치명적인 클레임을 받은 것은 자승자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불통 왕'의 두 번째는 우리가 현재 몸소 겪고 있는 유형이다. 자신의 고집과 아집에 둘러싸여 당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만약, 그 사람의 그것들이 맞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뚝심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집과 아집, 지식이나 경험이 잘못된 것이란 걸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것'과 '틀린 것'도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유형은 이 사람이 상사이든, 동료든 후배든 간에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때, 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불통 왕'의 면모를 보였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불통을 넘어 남을 바꾸려 한 위험한 시도를 한 건 아닌지에 대한 성찰 또한.

(참고 글: '절대,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 것')


셋째, 권력 왕 (vs. 리더 왕)


[관료주의]
관료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독선적, 형식적, 획일적, 억압적, 비민주적인 행동 양식이나 사고방식
- 어학 사전 -

역사적이나 사회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관료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 제도가 그렇고 교육 환경이 그러하며, 군대라는 계급 문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른 합이 어쩌면 직장의 그것에 못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 '관료주의'를 설명하는 단어들이 우리 직장에서 흔히들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관료주의'단어를 '직장생활'로 바꾸어 놔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소름 끼치게 잘 묘사했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권력'이 득세할 때다. '리더'가 아닌 '권력자' 아래서는 위와 같은 것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앞서 우리는 '리더란 영향력을 발휘하여 구성원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권력 왕'은 이와 다르다.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구성원이 성과가 아닌 자신을 보필하길 원한다. 구성원은 자신의 성과를 빛내고 닦아줄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을 잘못 활용한 예는 또 있다. 한 후배는 1년 전에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후배의 고속성장 비결을 궁금해했다. 팀에는 그 후배보다 10살이 많은 부장 팀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최연소 팀장의 신화가 깨지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팀원들을 권력으로 다스리고 불화를 일삼더니, 결국 협력업체와의 금전문제 및 부도덕한 일에 연루되어 권고사직을 받았다. '리더'가 되었어야 하는 사람들이 주어진 '권한'을 '권력'으로 오용하면 나타나는 일들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 사람의 성품을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 - 에이브러햄 링컨 -



넷째, 정치 왕 (vs. 전략 왕)


사실, '전략 왕'과 '정치 왕'은 종이 한 끝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시무시하다. '전략 왕'은 자신은 물론 팀과 공동의 품격을 상승시킨다. 이에 반해 '정치 왕'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목적으로 한다. 그 결과가 자신은 물론 팀에 기여를 하면 '정치 왕'도 어쩌면 '전략 왕'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그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결과를 보아 우리는 그 둘을 나눌 수 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들은 누가 '전략 왕'인지, '정치 왕'인지 과정을 보면서도 알 수 있다.

앞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내에서의 '정치'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치'라는 어휘가 주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나빠 보일 수도 있지만 좋게 포장한다면 이는 '전략적인 접근이나 계획'으로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나쁜 정치인들에게 하도 속아서 그렇지 '좋은 정치인'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잊을 정도로 속아온 것이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전략 왕'은 큰 그림을 보고 목표와 목적, 그리고 수단을 조율하는 반면 '정치 왕'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조급한 의사결정과 단기적인 업무 진행은 한계를 드러낸다. 회사나 공동의 목표는 안중에도 없다. '드러나는 사람'과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정치 왕'은 당연히 후자 쪽이다. 드러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정치 왕' 유형의 사람들은 이를 과도하게 추진한다. 함께 일하면 팀워크에 문제가 생긴다. 권력이 있을 경우에는 독재자가 되기 쉽다. 좋지 않은 유형의 것들은 모두 간직한 게 '정치 왕'일지 모른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싸우고, 불통하며,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무지(無知) 왕 (vs. 스킬 왕)


이구동성으로 말할 수 있다. 이 '무지 왕'이 상사로, 동료로 또는 후배로 있다고 생각해보자. 속이 터진다. '일 못하는 사람의 유형' 제 1 순위일 것이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업무 기술'도 필요하다. '업무 기술'이란 말 그대로 시스템을 잘 다루거나, 보고서를 잘 만들거나, 발표를 잘 하거나, 관련 영역 및 업무에 대한 전문적 지식 등을 말한다. 정말 재미있는(이라 쓰고 웃픈) 이야기지만, 현실에 그리고 우리 주위에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 몇몇이 꼭 있다는 것이다. 상사나 동료 또는 후배로 말이다.

속이 터지는 사람들은 '스킬 왕'이다. 일이 몰릴대로 몰린다. '무지 왕'은 게으르거나 무능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이 스킬을 가지게 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처리하는 게 낫다는 경우가 태반이다. 매일 다루는 시스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팀에서 돌아가는 공통의 issue나 agenda에도 관심이 없다. 전체 공지한 메일은 읽지 않고 나중에 뒷북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경쟁을 뚫고 입사를 해서 우리 주위에 앉아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나마 동료나 후배라면 이야기를 하거나 가르치면 될 것이다. 상사가 이 '무지 왕'에 해당된다면 정말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팀의 존폐위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윗 분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될 가능성이 높은' 직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나열하고 돌아본 유형들을 보며, 오히려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일을 잘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못 한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나는 일을 잘 하고 있을까, 못 하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같을까? 다르다면 얼마나 다를까? 본의 아니게 나의 업무에 몰입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닐까. 일을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팀워크에 피해를 준 건 아닐까. 때로는 회사를 위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맞다고 생각한 일들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진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 주위에 앉아 있는 상사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은 저마다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와 맞지 않다고 해서, 나의 의견에 손들어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일 못한다'라고 규정하진 않았을까?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다 서로를 '불통 왕'이라고 손가락 하진 않았을까? 내가 그 부서였다면, 그 팀이었다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을게 뻔한데도 말이다.


나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 대해 귀 기울이고, 자기 성찰을 해보는 것.

일을 잘 하기 위한 것 이상의, 어쩌면 인생을 좀 더 잘 살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중요한 기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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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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