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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08. 2024

우리는 느리게 추락하는 비행기에 앉아 있지.

<스테르담 철학관>

'영원'이란 말에 어쩌면 우리는 갇혀 있는지 모른다.


영원히 사는 것.

영원히 사랑하는 것.

영원히 아무 일 없이 편하게 지내는 것.


삶은 역설과 아이러니 덩어리라는 걸 상기할 때, '영원'에 대한 바람은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영원에 목매는 것이다. 사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편한 마음도 영원할 수 없다. 잠시의 순간이 다만 몇 초, 몇 분, 며칠이라도 이어지면 다행일까.


그러한 우리라는 존재는 영원할 것처럼 행복해하고, 영원할 것처럼 슬퍼한다.

행복을 마주하면 그것이 영원하길 바라며 붙잡는데 안간힘을 쓰고. 불행이 닥치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 거란 자포자기를 한다. 영원할 수 없는 존재가, 영원이라는 발끝에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영원을 바라며 저지르는 어리숙한 실수다.


우리는 느리게 추락하는 비행기에 앉아 있다.

추락하는 시간을 100년이라 해 두자. 물론, 누군가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비행기를 이탈하여 추락하는 경우도 있고. 추락해도 다만 몇 년을 더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는, 언젠가 우리가 탄 인생이라는 비행기는 추락할 것이며.

언젠간 숨을 멎는다는 것이다.


행복을 영원히 붙잡을 필요도 없고.

불행이 영원할 거라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마음은, 그 사람과 평생 같이 있을 거라는 착각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우주의 먼지인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더디게 보이지만, 우주의 역사로 보면 하나의 희미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당신의 고통을 하찮게 생각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고통에 평생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갇히도록 설계되어 있고, 자아를 하나의 우주로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넓게 볼 줄 알고.

좁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넓게 봐야 할 때 좁게 보고, 좁게 봐야 할 때 넓게 보던 과오를 이제는 덜 저질러야 한다.

고통과 불행은 넓게. 행복과 기쁨은 좁게. 그 중간 점을 찾아 행복과 불행에 크게 요동하지 않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그러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삶의 희로애락에 무덤덤해지자는 말이 아니다. 중간의 지점에서 그것을 만끽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그저 받아들이는 것으로.


행복을 경거망동하게 좇지 말고.

불행에 우울하게 억눌리지 말고.


나는 여기 있고.

행복과 불행은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에 더 시간을 쓰는 것으로.


내 비행기는 추락하려면 아직도 50년이 더 남았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추락하지 않고 영원할 거란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영원에 대한 미련보다는, 영원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를 되묻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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