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목이 메도록 울어제낀 적도 있다.
이러한 기억은 나이가 들어가며 희미해진다.
맘껏 소리를 지를 수도, 한껏 울어버릴 수도 없는 처지에 봉착한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우리는 페르소나를 꾸역꾸역 더 겹쳐 쓰게 된다. 대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다. 사회가 부여하고 강요하는 페르소나부터, 가족에게서부터 오는 것 또한 때론 무척이나 버겁다. 그러나 소리 지를 수 없고, 그러나 울 수도 없다. 괜찮은 척, 정산인 척, 아프지 않은 척, 무겁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
그러할수록 자신만의 '대나무 숲'을 만들어야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지금 내 마음은 무척이나 아픈 마음. 지금 내 감정은 울고 싶은 감정. 힘들다면 힘들다고 소리치고, 울고 싶으면 엉엉 소리를 내어 울 수 있는 곳.
그렇게 글쓰기는 나에게 '소리 없는 외침'이 되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숨 쉬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나로 하여금 쓰게 했다는 걸 똑똑히 기억한다.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글감들의 아우성 또한 잊지 못한다. 그것은 사자후와도 같았고, 곡성과도 같았다. 물론, 타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마음의 귀가 멀 정도의 외침이자 울음이었다.
우리는 때로 외쳐야 한다.
목으로 내는 소리도 필요하지만 목으로는 낼 수 없는, 내서는 안 되는 외침들을 잘 다루어야 한다.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해내려면 이러한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글쓰기로 얼마든지 우리는 소리칠 수 있고, 울어 재낄 수 있다. 분노의 감정이 활자와 함께 손 끝에서 사르르 녹아 버리는, 아니 그 이상으로 승화되는 쾌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글쓰기란 그런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챙기는 것. 소리치고 울 수 있게 해주는 것. 소리 없는 외침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부여해 주는 것. 용기와 희망을 표현하게 하는 것.
다시, 글쓰기는 '소리 없는 외침'이다.
맘껏 외치고, 맘껏 울고 난 사람에게 있어 더 이상 두려운 것은 없다.
세상이 우리를 속이면.
또 소리치고, 또 울면 되지 않는가.
계속해서 쓰면 된다.
계속해서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