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
획에 묻어 있는 힘.
사람들은 이것을 '필력'이라 말한다.
동시에 그것을 앙망한다. 누구라도 잘 쓰고 싶어 하고, 누구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활자로 남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체로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필력' 때문이다. 필력을 바라지만, 필력이 없기에 시작하지 못한다.
필력이 있어야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순간, 글쓰기는 영원히 시작되지 않는다.
써야 필력이 늘어나는데, 당연한 사실은 글쓰기는 재능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사라진다.
나 또한 진정한 필력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을 앙망한다. 그러나, 필력이 없다고 쓰지 않는 걸 지양한다. 일단 쓴다. 필력일 기반으로 써야 한다면, 나의 글쓰기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쓸수록 필력은 늘게 마련이다.
조금은 필력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필력'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래, 과연 '필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람의 의사 결정 능력은 '이성'이 아닌 '감성'에 있다.
무언가를 사고, 실행하고, 움직이는 건 머리가 아닌 마음의 결정에 따른다. 아무리 머리로 다이어트를 해야지...라고 생각해도, 살찐 모습을 거울에서 마주하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왜 이렇게 살쪘냐며 인사를 건넬 때 요동한 마음이 결국 우리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 뛰게 만든다는 걸 돌이켜보면 알 것이다.
'필력'은 이와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글을 읽고 웃거나, 울거나. 내가 경험한 것도 아닌데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는 것. 누워만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워,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 이것 모두 필력으로 인해 생겨난 것들이며,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글에 필력이 흥건히 묻어 있다는 말이 된다.
처음, 나는 필력이 손가락에 있다고 믿었다.
필력 있는 작가라면, 앉아서 자판을 신들린 듯 두들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필력은 손가락이 아닌 머리,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나온다는 걸.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내 글에 필력이 있는지 보려면, 내 글의 첫 독자인 나에게 물어보면 된다. 부끄럽더라도, 창피하더라도, 부족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 글을 내어 놓고, 마주해야 하는 이유다.
감정과 마음엔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가 있다.
이것을 '전이'라 말한다. 누가 옆에서 울면 나도 괜스레 슬퍼지는 것처럼. 그것이 딱딱한 활자로 내어졌다고 하더라도, '전이'를 글에 담을 만한 필력이라면 내 감정의 요동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정도보다 더 커야 한다. 고로,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삶을 뚜렷하게 봐야 한다. 그 안에서 무언가 마음이 움직일만한 것을 찾아내어, 활자로 적어 '전이'해야 한다. 그것이 가 닿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비로소 내 필력은 증명되는 것이다.
글쓰기는 삶쓰기다.
삶은 생각과 감정의 연속이다.
이것을 어떻게 잘 담아내느냐에 따라 필력은 좌우된다.
감정을 최대한 느끼고, 생각으로 그 의미를 찾아내고, 우주에 떠다니는 글과 단어로 잘 솎아내면. 글은 점차 완성되고, 필력도 점차 쌓이게 된다.
나는 오늘도 가슴에게 묻는다.
내 감정의 상태를 파악한다. 희로애락의 순간순간을 기록한다.
단 한 치의 감정이라도 휘발되지 않도록.
그리하여, 내 필력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요동하는 감정만큼이나, 많은 글을 내어 놓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