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글쓰기를 시작하고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누군가 나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질문'이란 단어를 먼저 내어 놓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 이것이 글쓰기로 시작된 가장 큰 변화다.
스스로에게 질문한다는 것이 왜 큰 변화일까.
'변화'란 '바뀜'을 말한다. 무언가의 모양이나 성질이 달라지는 것. 또 다른 표현을 하자면, 하지 않던 걸 하거나. 하던 걸 하지 않거나. '질문'은 전자에 속한다.
하지 않던 걸 하는 것.
글을 쓰지 않던 때를 돌아보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나 자신을 살피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에 호기심을 갖거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 '질문'이란 카드를 꺼내든다. 이성을 소개받았을 때, 상대방이 마음에 든다면 몇 시간을 서로의 질문으로 채워갈 것이다. 묻지 않는다면, 질문할 거리가 없다면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 테고.
왜일까.
왜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다. 둘째는 자신에게 질문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살게 된다는 말을 잘 알 것이다. 생각은 '질문'할 때 가장 크게 활성화가 된다. 질문을 받아 들면, 우리의 뇌는 검색과 탐색을 자동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묻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 우리네 세상은 이미 온갖 물질적인 유혹과 소비의 향락에 빠져 있지 않는가. 물질과 소비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알고리즘에 이끌려 지갑을 열 때, 과연 내 자아는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보자는 조용한 항변일 뿐이다.
고로, 나는 '글쓰기는 질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떠오르는 글감은 어찌 보면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지 화두다.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지난날의 기록이 오늘의 나를 깨우치게 한다. 오늘의 질문이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미래의 내가 나아갈 곳을 가늠해 준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이 참 많다.
글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내 착각이란 걸 깨닫는다. 더 알기 위해, 더 나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질문이 멈추면 생각이 멈추고, 생각이 멈추면 존재의 인식이 멈춘다. 존재의 인식이 멈추면 소비적으로 살게 되고, 소비적으로 살게 되면 자아에 대한 사랑이 식고 만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궁금하다.
가장 모르겠고, 가장 많은 질문을 자아내게 하는 어느 하나의 상대다.
끊임없이,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자는 다짐을 활자로 남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