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사지선다(四枝選多).
또는 주관식.
교육의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우열을 가리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면.
학교에서 배운 답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친 사회로 던져진다.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은 계속해서 주어지는데, 한 번이라도 답을 잘못 말했다간 먹고사는 일에 큰 지장이 있을 수 있어 이제는 답을 답이라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아이러니하고도 부당한 상황들을 마주하고야 만다.
이게 답이 아니었던가?
이게 답이 아니면 그러면, 무엇이 답인가? 어라? 분명 오답이었는데, 이게 왜 지금은 답이 되지?
그럴수록 세상이 정해 놓은 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내가 가진 답을 꽁꽁 숨기며 그렇게 자아는 소멸한다.
세상이 원하는 답을 말하면 할수록 마음은 허무해지고.
허무해지는 마음을 달랠 답을 찾기란 참으로 쉽지가 않다.
그러다 글쓰기를 만났다.
앞서, 글쓰기는 '질문'이라 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시점이 쓰기 시작한 시점과 맞닿아 있다는 걸 돌이켜보면, 글쓰기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는 명제가 성립되며 쓰기와 함께 비로소 자아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자, 질문을 했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대답할 차례다. 세상이 원하는 답이 아닌, 내가 원하는 답을. 내가 말한 답이 세상에 적용되지 않을 때 맞이한 고됨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설령, 내 답이 세상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할 지라도 이제 나는 그 답을 알아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은 부조리인 것을.
어차피 인생은 부조화인 것을.
답이 하나라는 착각은, 내가 정한 게 아니다.
정답만을 말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세상에 길들여진 나의 모습일 뿐이다.
답은 하나일 수도.
여러 개일 수도. 아니면, 답은 없을 수도 있다. 답 없이 질문만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꽤 오랜 시간을 썼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질문과 답은 반복될 것이다.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묻고, 계속해서 답하려 한다.
글쓰기는 '질문'이자 '대답'이다.
나에게 묻고, 나에게 대답하여야만 한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를 통해 알아낸, 변하지 않는 인생의 몇 가지 정답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