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멕시코 이야기>
멕시코라는 나라에, 사람에, 문화에 빠져들다 보면 그 매력에 심취하게 된다.
나라와 사람 그리고 문화에 대한 친밀감은 외적이 아닌 내적인 것이다. 여행은 외적 친밀감에 가깝지만, 직접 그곳에 살면 친밀감은 내면화된다.
친해지면 장난을 치고 싶다.
멕시코는 '아미고(친구)'의 문화가 아닌가. 친구끼리 하는 장난은, 서로를 잘 알기에 가능하다. 잘 알지도 못하고 친밀감도 없는 장난을 한다면, 이것은 장난이 아니라 시비다. 멕시코 친구들에게 어떤 장난을 쳐볼까. 어떻게 괴롭혀 볼까.
실제로는 할 수 없으니, 내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상상 속 장난을 쳐보기로 한다.
멕시코 사람들을 괴롭히는
몇 가지 방법
- 음식 편 -
또르띠야(Tortilla)는 옥수수 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구운 일종의 빵이다.
옥수수 외에도 밀가루 또르띠야도 있다. '따꼬'가 멕시코 영혼의 음식(Soul Food)라면, 이 영혼을 감싸 주는 것이 바로 '또르띠야'다. 우리로 치면 '쌀'에 해당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멕시코 사람들에게 또르띠야를 못 먹게 한다는 건, 한국 사람에게서 밥을 금지하는 것과 같다.
또르띠야가 없으면 따꼬란 음식도 불가능하다.
따꼬는 '손맛'이다.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모두 손을 사용한다. '손맛' 앞에 위생이란 말은 고개를 숙인다. 요리 중에 손을 안타는 음식이 있던가. 따꼬에 대한 예의가 있다. 하나는 팔과 고개의 각도다. 따꼬는 얼굴 정면에 수직으로 들어야 하고, 이때 중요한 건 고개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옆을 베어 물고, 다른 옆을 먹고 마지막으로 가운데 남은 걸 먹는다. 또 하나, 따꼬는 손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포크와 나이프를 쓰지 않는다. 따꼬를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다면, 파스타 면을 부러뜨리거나 상추쌈을 한 잎에 넣지 않고 포크로 먹으려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있는 이탈리아인과 한국인의 찡그림을 멕시코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따꼬를 손으로 못 먹게 한다고?
멕시코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세계 콜라 제1위 소비국은 다름 아닌 멕시코다. (참고로, 한국은 20위)
인당 한해 3백 잔(237 밀리리터 기준)을 넘게 마신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육류를 많이 먹는 음식, 더운 기후, 좋지 않은 식수 사정 등이 있다. 멕시코 식당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콜라가 없는 적이 없다. 한국에선 탄산음료를 끊었었는데, 멕시코에 오니 콜라를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따꼬를 먹을 땐 필수다.
죄책감을 좀 덜고자...'Sin Azucar (무설탕)'을 시키곤 한다. 주문할 땐 '꼬까 쎄로 뽀르 파보르 (Coca Cero Por Favor)'라고 하면 된다. (가만있어 보자... 따꼬 먹을 때 콜라를 금지하면, 멕시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괴롭겠는 걸...)
우리나라 사람에게 라임은 음료수와 어울리는 무엇이다.
멕시코는 이야기가 다르다. 밥에도, 따꼬에도, 해산물에도, 국물에도, 살사에도, 맥주에도... 어디든 넣지 않는 곳이 없다. 식당에 들어가면 반찬을 내어주듯, 멕시코에선 살사를 내어 주는데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라임이다.
멕시코 라임은 작고 껍질이 얇다.
향은 물론 신맛도 강한데, 은근 모든 음식이나 식재료, 음료수와 궁합이 잘 맞는다. 특히, 국물에 라임을 넣어 먹는 걸 배운 뒤에는 라면에 라임을 넣어 먹을 정도다.
참 반가운 정서다.
멕시코 사람들의 맵부심은 생각보다 크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섣불리 맵부심을 부리면 안 된다. 고추의 종주국이 바로 멕시코 이기 때문이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은 '매콤 달콤한 맛'과 '칼칼한 맛'이다. 한 마디로 '맛있게 매운맛'이다. 그러나 멕시코의 매운맛은 그냥 맵니다. 정말로 매운맛이다.
고추의 종주국답게, 멕시코엔 다양한 매운맛의 음식과 살사가 있다.
특히 식전에 나오는 살사를 조심해야 한다. 빨간색이 아닌, 연한 녹색을 조심해야 한다. 청양고추보다 더 매운, 하바네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요는, 멕시코 사람들도 매운맛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과일에도, 칵테일에도, 맥주에도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사람들에게 매운맛을 금지한다는 건, 그들을 제대로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밖에도 음식으로 멕시코 친구들에게 장난을 칠 수 있는 방법은 더 있다.
먹을 때 웃음을 금지한다던가 (멕시코 친구들은 먹을 때 세상 행복해한다), 후식을 못 먹게 한다거나 (후식 빠진 식사는 팥 없는 팥빵 갖다고나 할까), 아침 메뉴에서 달걀을 뺀다거나 (달걀은 멕시코 아침 식사의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위 장난들이 현실화되면 나 또한 많이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멕시코에 동화되었고, 누구보다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있으니.
이곳에서 있는 동안, 그들과 함께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마셔야겠다.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