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독립 기념일>
멕시코의 9월엔
온 거리가 세 가지 색으로 물든다.
네덜란드 왕에 날에 온 거리가 오렌지 색으로 물들듯, 멕시코는 국기(반데라)의 세 가지 색으로 도배가 되는 것이다. 멕시코에 대한 무지(無知)는 멕시코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으로 시작된다. 애초에 중남미와 멕시코는 내가 계획한 인생의 루트에 있지 않았었으니까. 멕시코엔 아즈텍에서 전해져 오는 언어가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부임 전 2개월 전에 급하게 회사의 결정을 받아 들고 나서야 멕시코가 스페인어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음이 틀림없다. 유럽에서도 주재 생활을 했었지만 그땐 영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적어도 사무실 안에선. 그러나 멕시코는 다르다. 스페인어로 회의가 진행되고, 바이어 회의도 스페인어다. 스페인어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곳.
그렇다면 이쯤에서 멕시코의 독립을 되돌아볼 때다.
9월 16일. 아직도 스페인어를 말하지만, 스페인어로 '비바 멕시코'를 외치는 그들의 사연은 어떠할까?
멕시코 독립의 불씨
18세기말, 유럽을 휩쓴 혁명의 바람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까지 퍼져나갔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던 멕시코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데, 억압된 크리올(Creole: 끄레올레/ 스페인계 혼혈 귀족, - 작가 주 -)들은 점차 독립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다. 결국, 스페인 본국에서의 정치적 혼란과 나폴레옹 전쟁은 멕시코 독립을 위한 단초가 되었다.
1810년 9월 16일, 돌로레스 마을의 미겔 이달고 신부는 인디언과 메스티소를 규합하여 스페인 통치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의 외침은 멕시코 전역에 번져나갔고 독립 전쟁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이달고 신부는 잠시나마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스페인군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독립에 대한 열망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달고 신부의 뒤를 이어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비센테 게레로 등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여 독립 투쟁을 이어갔다. 그들은 스페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멕시코의 자유를 위해 헌신했다. 특히 게레로는 게릴라 전술을 활용하여 스페인군을 괴롭혔고, 멕시코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1821년,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스페인군 장교 출신으로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과 협상을 통해 멕시코의 독립을 이끌어냈다.
이투르비데는 멕시코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지만, 귀족과 자유주의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1년 만에 퇴위하고 처형당하고 말았다. 이투르비데의 퇴위 이후 멕시코는 공화국으로 재편되었지만,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갈등은 계속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독재가 시작되었고, 농민과 노동자들은 극심한 빈곤과 억압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멕시코 혁명
그리고 현대 국가의 탄생
독립 이후, 지금의 멕시코 국가 체계를 이룬 건 바로 '멕시코 혁명'이었다.
1910년,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중심으로 멕시코 혁명이 발발했다. 혁명은 10년 동안 이어지면서 멕시코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농지 개혁, 노동자의 권리 신장, 교육 시스템 개혁 등 다양한 개혁이 이루어졌고, 현대 멕시코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은 멕시코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독립 후 어떠한 국가로 거듭날 것이냐에 대한 중요도를 보면 멕시코 혁명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이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시스템 전반에 걸친 깊은 변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910년부터 1920년까지 지속된 이 혁명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멕시코를 넘어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독재와 사회 불평등, 사회 변화에 대한 갈망은 결국 사회 불평등에 대한 개선과 민주주의 발전으로 귀결되었다.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에 독립을 이루었다.
멕시코가 독립을 한 지 124년 뒤고, 혁명을 이룬 지 20년 후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독립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 소련의 공동 점령이 결국 남북분단과 한국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게 안타깝다. 역사의 비극은 여전히 한반도는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또한 미국과의 충돌 (멕시코 전쟁 1846년 ~ 1848년)로 독립 이후 텍사스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뉴 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와 콜로라도 영토를 잃었지만 그 궤는 우리네 분단 현실과 확연히 다르다.
다만, 언어적 차원에서 독립을 바라본다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신비한 차이가 있다.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언어적 지배를 벗어나 독립의 날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우리.
자주적인 혁명을 통해 지금의 거대한 영토를 수호해 낸, 그러나 독립의 날에 스페인어로 'Viva Mexico'를 외치는 멕시코. 일본어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걸, 나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언어의 영향일까, 교육의 영향일까.
멕시코 친구들에게 스페인에 대한 감정을 물으면 그다지 큰 불만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건, 언어의 사용이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단순히 언어적인 것으로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찌 되었건 식민의 아픔을 가진 멕시코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난, 'Viva Mexico'를 열렬히 응원한다.
9월 16일 독립의 날 자정, 그들은 광장에 모여 'Grito(외침)'을 하는데, '대한독립 만세'의 기운으로 그들에게 축하의 감정을 아낌없이 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