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멕시코 이야기>
멕시코에 주재한 지 만 3년이 훌쩍 지나고 있다.
유럽에서 일할 땐 어느 국가든 영어로 소통이 되었지만, 미국 이웃인 이곳 멕시코에선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다. 한국 상사나 동료 모두 스페인어를 말하고, 현지 친구들도 영어를 어렵게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영어보다 많이) 많이 사용하는 언어인데, 굳이 영어를 배울 일도 없겠다 싶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듯, "당신 스페인어를 말할 수 있나요?"라는 말을 멕시코 사람들은 스페인어로 묻는다. 어느 한 번은 뉴욕 한 복판에서 아시아인인 나에게, 어느 중남미 아주머니께서 스페인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스페인어를 말한 적도, 사용한 적도, 제2 외국어로 배워본 적도 없는 내게 이러한 환경은 두려운 무엇이었다.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인한, 내 인생 리스트와 지도엔 없는 일종의 사건이었기에.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스페인어를 제법 잘 듣고 말한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고, 바이어들과의 상담도 스페인어로 진행한다. 동료들과 농담도 주고받는다. 짧은 시간에 스페인어에 익숙해져 스스로 대견할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니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
언어를 배우면, 상향 평준화를 기대한다.
그런데 스페인어를 배우니 반대가 되었다. 스페인어로 일상에서 문제없이 소통하지만, 어느새 영어를 잊게 되었다. 그러니까, 영어가 스페인어 수준으로 내려온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아래로. 간혹 스페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걸 영어로 말해야 하는데, 영어를 말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왜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효율성'이다. 스페인어는 동사에 시제뿐 아니라 주어도 포함되어 있다. 언어가 축약되어 있다는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뇌는 더 효율적인 말을 내뱉게 되어있다. 물론, 영어보다는 스페인어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니, 미국에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도 영어로는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예전에는 몰랐지만 미국에서도 스페인어가 꽤 통한다는 것이다. 입국 심사장부터 상점, 호텔, 식당 등. 중남미 이민자도 많을뿐더러 지명 자체가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것도 많은 터라, 생활 곳곳에 스페인어가 침투해 있다.
'Yes'보다는 'Si', 'Thank you'보다는 'Gracias'가 더 먼저 튀어나온다.
언젠간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80% 이상을 스페인어만 말하다 온 적도 있다.
'Come'이란 단어를 보자.
스페인어를 몰랐다면, 당연히 영어 'Come(오다)'라고만 여겼을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 이 단어는 'Come(꼬메); Eat(먹어라)'로 보인다. 그러니까, '컴'이라고 읽지 않고, '꼬메'라고 읽는다.
한국 식당에 가 숯불이 약해져 숯을 더 달라고 할 때, 'Carbon(까르본) por favor'라고 말한다. 스페인어로 숯을 어떻게 말할까... 궁금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영어의 '카본'이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이고 스펠링도 같은데 발음이 달라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는 알파벳이나 어떤 단어를 보면, 알파벳 그대로 발음하고 본다.
물론, 자음은 된소리로.
이제는 한국말을 하다가도 스페인어가 튀어나온다.
잘 못 알아 들었을 때, 'Como? Como? (꼬모 꼬모?)'란 말을 입술이 먼저 말하려 스스로를 모으는 걸 느낀다.
멕시코를 떠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아마도 스페인어는 금세 잊힐 것이다.
그러나 사투리를 잊었어도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하면 저도 모르게 나오는 것처럼, 그리움과 반가움을 가득 안고 훗날 어느 멕시코 아미고와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레 다시 생각나지 않을까.
이리 생각하니 이곳 멕시코에 있지만, 벌써부터 멕시코가 그리워진다.
있는 동안, 말할 수 있는 동안, 즐길 수 있는 동안 멕시코를 그리고 그 언어를 한 번이라도 더 듣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