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부조리스러운 부조리 예찬>
삶은 습관과 타성에 질질 끌려가는 어느 하나의 현상이다.
그러다 문득 인간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영문을 탐구하고, 죽음을 떠올려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간을 보낸다. 죽음이라는 근원적이면서도 조리 가득한 사실은, 죽음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의미를 깨우친다.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는 자는 당연히 삶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며, 삶에 대한 의문은 곧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막을 내린다.
답은 없다.
의미도 없다.
이때, 사람에겐 '부조리의 감수성'이 폭발한다.
아, 세상은 부조리한 것이구나. 뭐 하나 제대로 들어맞는 게 없구나.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뜻도 없는 게 삶이구나. 그래서 내가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구나. 이것저것을 끼워 맞춰, 어떻게든 설명을 해야 하겠구나.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하여 탐구하거나 혹은 아예 비뚤어지거나.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삶에 대한 회의를 느껴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보단, 다시 습관과 타성에 젖어 죽지 못해 살거나. 부조리한 삶에 도전장을 내밀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저항을 하거나. 이것 외에 어떠한 또 다른 삶의 방식과 형태가 있을까.
부조리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여 '부조리'라고 부르는 것이며, 인간은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좌절을 각오하고 그러함에도 숨 쉬려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고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은 하되.
논리적으로 대답하려 들지 말자. 삶과 죽음에 대한 합리적 추론은 애당초 과욕이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위해 우리는 '감정'이란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모호함은 간혹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감정이 없었다면, 이성을 벗어나는 것들에 대한 규명의 부재가 우리 뇌를 폭발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부조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간혹 우리는 감정으로 대답해야 할 때가 분명 있다.
- 라이프 인사이터 스테르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