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스테르담 부조리스러운 부조리 예찬>
조리 있게 말을 잘한다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조리'는 앞 뒤가 딱딱 들어맞는다는 말이다.
삶은 앞뒤가 딱 들어맞지 않는다.
단 하나 들어맞는 게 있다면,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 외 삶의 모든 순간은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부조리에서 허우적 대는 존재를 보고, 이를 만든 또 다른 존재는 얼마나 우리를 비웃고 있을까.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 개미의 삶이 우리네 그것과 같지 않을까. 버려진 자들. 방치된 존재들.
'조리'가 성립되지 않으면, '부조리'가 성립된다.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왜일까?
의미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삶엔 분명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삶의 부조리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 우리네 생존 방식이다. 하여, 혹자는 그 어떤 것에 집착한다. 사람, 돈, 사랑, 섹스, 마약, 일, 사물, 소비, 노래, 영화 등등등등등. 그것들이 어떤 자극과 의미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의미'가 진정한 '의미'일까?
그 의미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의미는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상대적으로 절대적이고,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것이 바로 '의미'다.
차라리,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실토하자.
실토하면 편해진다. 역설적으로 또 다른 의미가 생긴다. 존재하진 않더라도, 어렴풋이라도 무언가를 알 것 같은 삶의 의미가.
- 라이프 인사이터 스테르담 -